희망을 믿는 우리는 청춘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4-11-25 18: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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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발레 교습소' 내달 3일 개봉 `대부분’이라는 말로 한정을 짓는 게 우습지만 사실 이 나이 그 처지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다.

딱히 하고 싶은 일들도 없고 그렇다고 되고 싶은 것도, 닮고 싶은 사람도 없다. 우리 안에만 있다가 갑자기 들판으로 나간 맹수처럼, 아파트에만 있다 처음 세상을 구경한 강아지들처럼 힘은 넘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제 막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이 친구들이 딱 그렇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민재(윤계상). 곧 세상에 나가봐야 할 처지지만, 진로 결정에서부터 삐걱거린다. 아버지(진유영) 뜻대로 항공운항과를 갈 처지는 못되고,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동갑내기 여고생 수진(김민정)에게 고백할 용기도 없고 가정 문제로 고민 중인 친구에게는 도움이 될 말 한마디 못 하고 그저 어색한 웃음을 던질 수 있을 뿐이다.

못하는 것도, 못할 것도 없이 자신감을 내비치는 수진. 세상 다 알고 있는 척 하지만, 실은 자기 꿈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확실히 바라는 것이라면 오빠만 챙겨주는 집안에서 벗어나는 일 정도. 동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수의학과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독립을 하기 위해서다.

12월3일 개봉하는 `발레교습소’ (제작·좋은 영화)는 `세친구’나 `고양이를 부탁해’ 등 `진지한’ 청춘물의 계보를 잇는 영화다. 재작년 `밀애’로 처음 장편 극영화를 연출했던 변영주 감독은 신작 `발레교습소’에서 임순례 감독이나 정재은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편집의 화려함보다는 건조한 카메라 속에 아이들의 진심을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캐릭터가 갖는 사실성에 대해서 100%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19살들에게는 이해심 많은 누나(혹은 언니)가 등을 두드리며 던져주는 격려가, 어른들에게는 스스로의 `그 시기’를 기억하며 `이 녀석들’을 이해하는 조언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수능 시험을 마치고 두세달여간의 여유 시간이 생긴 이 아이들이 서로 만난 곳은 발레 교습소다. 민재와 수진을 비롯해 창섭(주완), 동완(준기) 등 저만의 고민을 가진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구민회관 부설 발레 교습소에 등록한다.

이곳에서 이들이 만난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가족, 친구들, 선생님 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구민회관 강좌를 섭렵한 동네 비디오 가게 아저씨(이정섭)와 가족을 잃은 상처를 숨긴 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요구르트 아줌마(조한희), 유쾌한 `동네 형’인 중국집 배달부 종석(도한) 등 이전의 인간관계에서는 없었던 사람들이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발레에 재미를 들여가는 아이들, 구민회관에서 열릴 발표회를 준비하던 중, 민재와 수진은 서로 애정을 키워나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이 각자 안고 있던 고민들은 점점 커져 간다.

배우로 `변신’을 선언한 윤계상의 연기가 기대 이상이고, TV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던 김민정의 연기도 좋지만,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리 `교육적’이지 않게, 그렇다고 마냥 긍정적이지도 않게, 아이들의 가능성을 드러내 주는 감독의 태도에 있다.

장르영화로 생각해 그저 멜로물이나 청소년물의 전형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인물들의 산만함이나 기대대로만 가지 않는 엔딩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19살이라는 나이에 그 이상의 의미를 두고 있는 관객이라면 극장 안에서 만족스러운 두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 하다. 상영시간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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