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고통이 그녀의 몸을 관통해 시가됐다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6-11-07 19: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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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유고시집 ‘골목 하나를 사이로’ 발간 1996년 첫시집 ‘골목 하나를 사이로’가 나왔다. 2003년, 그 시집의 주인은 죽었다. 43세였다.
최영숙의 유고시집이다.

최영숙은 육체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바람 든 무’에 비유하면서 ‘바람이 지날 적마다 바람을 껴안아 바람이 없으니 이제 무는 아무것도 아닌 무가 되었다’고 노래했다. 시인은, 이 무(無)로 돌아가는 죽음을 ‘속이 텅 비어 가벼운 생을 완성하는 것으로’(바람 든 무) 담담히 받아들인다. 분식집의 고요한 풍경을 그린 ‘옛날 손만두집’ 역시 잔잔한 톤의 묘사가 압권이다. 화자는 한끼 식사를 하면서 ‘나의 오랜 出(출)이 여기서 끝나주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만두꽃처럼 익어 만개한 삶을 시적 직관으로 이끌어내면서, ‘가리라, 저 화엄의 거리로 지금 난 잘 익어가는 중’이라고 외치는 이 작품은 고통을 절제하면서 빚어낸 역작이다.

시인에게 삶은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삶의 마지막은 끊임없이 비우기 위해 노력하다가 비로소 ‘아무것도 들이지 않은 빈방’, 즉 ‘등 따순 작은 봉분 하나’를 갖는 것이라 말한다(빈방). 이러한 완성을 향하는 무욕의 비움은 단순히 초월의 의지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남은 삶의 애착과 생의 깊은 고뇌를 통해 완성한 것이다. 삶의 여정에는 수많은 문이 있고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 싸우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고뇌의 한가운데 있을 때에 비로소 ‘내 앞에, 餘生(여생)이라는/ 문이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門·문) 질문할 수 있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을 때 시인의 눈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 생의 의미를 길어올리게 된다. 나뭇잎에서 ‘이미 세상에 없거나 떠나버린’ 얼굴을 들여다 보고(나뭇잎 얼굴), 짧은 외출에서도 ‘맑고 깊고 어둡고 슬픈, 이상하게 낯설지 않고 환하며 따스한 것’을 발견하고, ‘차 한잔에 한생을 다 들여다본 것만 같은 하루’를 자각하기도 한다(茶園(다원)에서 차를 마심)

최영숙은 두 권의 시집을 남기고 빨리 떠났다. 하지만 시인은 한생을 ‘꽃잎 날리는 소풍날 찐 계란과 같이 먹는 소금’처럼 ‘짜고 그리운 시절(찐 계란과 소금)로 추억할 것이고, 남은 이들은 그녀의 시에서 내내 위로받을 것이다.

60년 서울에서 태어난 시인은 1992년 ‘민족과 문학’에 ‘회복기의 노래’ 등 10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2001년 지병인 심장병에 더해 루프스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3년 10월29일 확장성 심근증, 골다공증, 루프스 등의 합병증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추모 3주기에 맞춰 출간한 이번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에 담긴 시 43편은 첫시집 이후 8년 동안의 기록을 모은 것이다. 눈물겨운 삶의 열정이 스며 있다. 고인과 절친했던 시인 박흥식씨와 친구 방형자씨의 발문도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가슴 아프게 추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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