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아빠의 자격’은?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4-06-02 14: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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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로 치닫고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발생한 고승덕 후보의 친딸 고희경 씨의 폭로 내용을 놓고 부녀간에 서로 반박과 공격이 이어지면서 아이들 보기에도 민망한 혈육전(血肉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난타전을 지켜보면서 많은 유권자들은 ‘아빠의 자격’과 ‘교육감의 자격’에 대해서 새삼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고승덕 후보의 친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녀를 돌보지 않은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린 게 발단이 됐다.

고 후보의 딸 캔디 고(한국 이름 고희경·27)씨가 지난 31일 페이스북에 '서울 시민에게(To the Citizens of Seoul)'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2000년대 초반에 그가 한국 부모들에게 최선의 자녀 교육 방법에 대해 발표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며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식들을 교육시키지 않았고, 전혀 돌보지도 않았기(completely disregarded)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서울시 교육감 출마는 선을 넘어서는 것(crossing the line)이고, 여기서 내가 침묵한다면 서울 시민들을 속이는 것이 된다"며 “아버지는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딸의 글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자 그날 밤 고 후보는 "아픈 가족사에 대해 세세한 말씀을 드리기 어렵지만 아버지로서 결별 과정과 재혼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큰 상처에 대해 평생 미안한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파문이 점차 확산되자 고 후보는 지난 1일 오후 서울 을지로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딸이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부모 행사에도 참석했고 아버지로서 행복한 순간도 많았다"며 "아이들이 몇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올 때 만났고, 딸과 가끔 전화를 하거나 문자, 카톡(카카오톡)을 주고받아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고 후보는 "제 자녀를 이용해 저를 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공작 정치에 맞서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다.

특히 고 후보는 ‘공작정치’ 배후로 문용린 후보 측을 지목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고 박태준 회장 사망 때 문용린 후보가 장례위원을 맡을 정도로 고 박 회장의 아들과 문 후보 사이에 2대째 내려오는 끈끈한 관계가 있어 딸의 글이 이들의 야합에 의한 것이 아닌지 정황을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문용린 후보 측은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하며 자기 책임을 다른 후보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고 후보를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런 논란을 비켜보던 고 후보의 친딸은 "저는 27살 성인으로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며 “내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을 쓴 것이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다”라고 '음모론'을 반박하고 나섰다.

사실 고 후보의 친딸이 올린 글을 처음 대할 때만 해도 ‘아빠의 자격’과 ‘교육감의 자격’을 혼동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웠었다. 아마 많은 유권자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빠로서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교육감으로서는 얼마든지 잘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 후보는 아빠로서 부족한 모습이 아니라 아예 천륜(天倫)을 저버리고 말았다.

처음 고 후보가 딸의 글을 보고 “아버지로서 결별 과정과 재혼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큰 상처에 대해 평생 미안한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일 때만 해도 필자는 고 후보를 단지 ‘미안해하는 부족한 아빠’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교육감을 못할 것도 없다는 판단을 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뚜렷한 근거도 없이 ‘공작정치’를 운운하며 자신의 친딸을 음모의 배후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목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설사 그런 생각을 했더라도, 그리고 만에 하나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친딸을 향해 ‘공작정치’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가.

그것은 고 후보 스스로 천륜을 끊어내는 행위를 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말 자신의 딸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 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어떤 경우에라도 아버지로서 친딸을 향해 ‘음모’라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그냥 후보직을 자진사퇴했더라면 유권자들은 그런 고 후보를 향해 애틋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고, 나중에 그런 모습을 기억하고 그에게 힘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그의 선택이 너무나 아쉽다.

아무튼 고 후보는 교육감으로서의 자격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아빠로서는 자격이 없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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