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세 칼럼] 선비와 향원(鄕愿)

오현세 / / 기사승인 : 2014-06-10 14: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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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세 객원기자 색다른 신념을 가진 판사가 있어 화제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영장전담 이형주 부장판사가 그 주인공이다. 언론마다 다루었으니 상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요약하면 이 판사는 지방 운항관리자 C씨 등 2명이 도서간 운항 선박 안전검사를 담당하면서 500여 차례의 허위 보고서를 쓴 혐의에 대한 검찰의 영장 발부 신청을 기각했다. 이유는 “대한민국같이 질 낮은 나라에서 이런 행위나 처벌한다고 사회가 바로잡아지겠는가. 나라부터 정신 차려야지”였다.

이 판사는 또 도박 사이트로 30여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운영자에 대해 “나라가 로또, 경마, 경정 등 엄청난 도박으로 돈을 벌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개인의 그만한 범죄에 실형을 내릴 수 있는 가.”고 반문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판사의 이러한 판단의 배경을 보면 해당 범법행위의 부당성을 처벌하기보다 그 행위의 원인을 바로잡아야겠다는 확고한 신념과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하겠다는 선비정신 즉, 기개와 지조가 보인다. 그렇다면 이판사의 판단을 재단하기 전에 신념이 무엇인지, 선비정신이 무엇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신념은 양날의 칼과 같다. 신념은 독단일 수도 있고 공의(公義) 실현을 위한 확신일 수도 있다. 우리가 칭송해야 할 것은 당연히 후자다. 공의 실현은 조선 선비의 최대 관심사이자 목표였다. “개인적인 욕망을 이겨내고, 나와 타인이 다 함께 이 세상에서 생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의 선인 공적 의로움, 즉 공의를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정옥자 교수)

그렇다면 이 판사의 판단이 독단인지 공의실현을 위한 선비정신인지 되돌아보자. 선박안전검사를 맡은 운항관리사가 그 임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안전하지 않은 배를 탈 가능성이 생기고 그 가능성은 곧 인명피해 발생이라는 개연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행위, 남의 생명에 관련된 임무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지탄받아야 마땅한 범죄행위요 이 판사의 표현대로 설령 질 낮은 나라에서라고 허용될 수 있는 성질의 행위가 아니다.

판사직에 오를 만큼 배운 사람이 왜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되었을까? 그 해답을 나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찾고 싶다.

사람은 자기가 터득한 사상에 대해 지속적인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성찰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강직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광(狂)의 폐단에 빠진다. 이른바 공자의 육언육폐(六言六蔽)의 한 구절이다.

이러한 성찰의 필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표가 될 만한 지성들이 강조해 온 사항이다. 칸트도 다음과 같은 말로 배운 자들에게 경계의 말을 남기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인식과 착오는 지성의 한계나 박약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로부터는 단지 무지(無知)가 생길 뿐이다. 만약 착오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지성의 결여로부터가 아니라 어떤 적극적인 힘이 지성의 활동에 끼어듦으로써 생긴 것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이 판사의 판단을 되돌아보자. 이 판사와 같은 판단이 옳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범죄행위도 처벌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주폭(酒暴)은 어떤가. 난동을 부렸으나 국가가 허용한 음료를 마시고 저지른 행동이니 국가를 나무라야지 난동을 부린 개인을 벌 줄 수 없지 않은가? 강간범이 국가가 공창제도를 없애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본능을 해소하기 위해 강간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변하면 어쩔 것인가? 주폭의 피해자나 강간의 피해자나 선박의 허위 안전검사로 인한 사고의 피해자, 불법 도박 사이트로 인한 피해자들 간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판사가 이러한 판단을 내렸다면 이는 불행히도 칸트의 말대로 이 판사의 지성에 어떤 비 공의적 적극적인 힘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성은 선비의 것이 아니라 향원(鄕愿)의 것이다. 향원의 자의(字義)는 ‘마을 사람들의 신망을 얻기 위해, 선량함을 가장한 사람 또는 외관으로는 점잖아 보이나, 실제로는 세인을 속이고 명예를 얻으려는 자’라고 되어 있다. 철인정치의 이상을 지향한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일찍이 그의 저서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향원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탐관오리나 아첨꾼은 소인의 전형으로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으나, 유독 사이비(似而非)한 인물만은 그 실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낯빛은 근엄하고 입은 옳은 소리만 하는지라 자태와 언행이 참된 군자의 그것과 닮아 있고(似), 근후(謹厚)하여 꼬집어 비난할 데가 없는지라 온전하고 허물이 없는 군자의 행실과 비슷하기(似)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현(聖賢)은 그러한 인물을 더욱 깊이 경계했던 것인 바, 국가 사회에 심대한 해악을 끼치는 인물이 다름 아닌 향원이다. “

이러한 사이비 선비 즉 향원이 지금 이 시간, 대한민국의 판사로 일하고 있다. 때문에 이 판사의 판단에 대해 비이성적이라거나 반사회적, 또는 비인간적이라는 등의 모든 비난의 정당성 요청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각한다. 이 판사같은 인물을 판사로 만든 것이 바로 우리 자신, 우리 교육, 우리 사회이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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