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세 칼럼] 관리

오현세 / / 기사승인 : 2014-11-19 16: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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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세 객원기자
▲ 오현세 객원기자
수능 때문에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며칠 전 신문에 실린 한 인터뷰 글을 떠올렸다. “혁신이란 아무런 혁신 정책을 내놓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4~6일에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4’의 연사로 초청받아 방한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랄프 아이흘러 총장(67)의 ‘대학 혁신’에 대한 소신 가운데 한 구절이다. 취리히연방공대는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대학이자 영국 대학평가기관의 ‘세계대학평가 2014’에서 12위를 차지한 대학이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깊은 통찰에서 나온 말인지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알기나 한 듯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창의적인 사람의 특징은 내적 에너지가 매우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선 우선 지도할 때 수직적 시선이 아니라 수평적 시선으로 학생들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반발하고 자신을 가둬 버려요. 특히 창의력 넘치는 학생들을 지도할 땐 ‘이것이 창의력’이란 정의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합니다. 그게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절대로 조직을 관리하는 자리를 주면 안 됩니다. 기업 임원직이든 정부 관료직이든 학교 교직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혁신을 이끄는 사람들은 창의력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신만의 철학이 아주 확고하기 때문에 조직 관리자가 되면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가장 괴로워하고요. 반면 조직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창의력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의견을 조정하는 능력과 친화력, 치밀한 경영 능력이 돋보입니다. 각자의 재능을 잘 살려 주는 것 또한 교육과 사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특히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절대로 조직을 관리하는 자리를 주면 안 됩니다.”라는 구절에 가슴을 쳤다. 수능을 보는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고 자율성이 빼앗긴 채 끌려 다니는 대학들이 불쌍해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며느리, 사위를 맞는데 국가에서 기준을 정해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유는 얼마든 지 만들 수 있다. 사전 신체적, 정신적 검사 의무 규정을 만들며 유전병을 막아 건강한 국가를 만들겠다고 할 수도 있고 결혼생활의 파탄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양가의 재산과 학력수준을 비교해 적합, 부적합 판정을 내리겠다고 할 수도 있다. 농담처럼 들리는 이들은 나치 정권 시절의 독일에서 결혼을 앞둔 청년들을 심사 했던 역사를 되돌아보기 바란다.

이런 현상은 관료가 혁신의 주체가 되려할 때 생긴다. 관료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망상, 백성은 어리석을 뿐이라는 망상, 그래서 관료가 이끌어 주어야 국가가 잘 된다는 망상에 빠져있을 때 생긴다.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보면 딱 그렇다. 자기 학교 학생을 뽑는데 왜 남이 밤 놔라 배 놔라 하나? 학생 잘못 뽑으면 결국 해당 학교가 불이익을 받는다. 그런 학교는 가만 놔두어도 도태된다. 결국 학생을 잘 뽑기 위해 각 학교들이 최선을 다하게 된다. 뻔한 자유 경쟁사회의 모습이다.

한때 우리 사회는 교육에 관한 한 자유경쟁체제였다. 학생들은 중학교부터 자기가 원하는 학교를 가기 위해 머리를 싸맸고 학교들은 최고의 학생들을 뽑아 명문의 이름을 유지하고자 기를 썼다.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학생들의 운동 부족을 염려하는 소리가 수시로 들려왔고 과외 과열로 인한 부작용이 사회 문제가 되었다. 그런 현상을 없애겠다고 정부가 나선 결과가 지금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강건해졌나? 학원에 목이 졸려 허덕이는 학생들이 과외 하는 학생들 보다 더 행복해 보이나? 수능이라고 대학생도 풀기 힘든 문제가 나오는가 하면 다음해에는 만점자가 수두룩 양산되는 문제가 나오기를 반복하고 난수표보다 더 복잡한 각 대학의 입시 요령은 전문가의 보조 설명 없이는 자신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기가 아예 불가능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매년 새로워지는 교육정책을 보면 우리나라 정책 담당자들은 어쩌면 그리 창의성이 넘치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우리 사회에서 물리학자이며 이름 있는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으며 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보고 창의성이 모자란다고 하면 아마 노발대발 할 것이다. 그러나 랄프 아이흘러 총장은 자신은 결코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은 창의성이 있는 사람들을 도와 그 재능을 살리는데 적합하고 또 그 일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명종 때 재야 학자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은 한수는 이렇게 말했다. “제왕이 소소로운 일에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면 만사가 절로 다스려질 것이다. 소소한 일을 다 살피려 한다면 사람의 정신에 한계가 있으니 비록 어진 정승이 있어도 다스릴 틈이 없을 것이다.”

제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도 이러해야 한다고 할진대 공무원이라는 자리에 있다고 제발 창의성 넘치는 백성들에게 좀 이래라 저래라 않을 수는 없는가? 어찌하면 똑똑한 백성들을 도울 수 있을까 노심초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훼방이나 놓지 않을 수는 없는가?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벼슬길을 마다했던 한수는 임금의 거듭된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조정에 나아가 사헌부(지금의 감사원)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그의 강직함에 불만을 품은 관리들의 미움을 사 낙향하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이 관리라는 인간들을 어찌하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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