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특종’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한국 영화가 그린 ‘기자’들의 모습

온라인 이슈팀 /   / 기사승인 : 2015-11-14 13: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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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무로가 애정을 가지는 키워드는 ‘기자’가 아닐까 싶다. ‘특종: 량첸 살인기’ ‘내부자들’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속 기자들이 종횡무진 극을 이끌어 가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직업에 대한 신선함과 다이내믹함을 전하며 이야기에 흡입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심하게 치이며 고통스러워할수록 보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에 대해 더욱 큰 포만감을 느낀다. 특히 기자라는 직업을 타고난 인물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직업병인지 그들은 필력을 넘어 언변 또한 청산유수다. 사람을 홀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시종 관객들을 말로써 가지고 놀다가 최후의 순간에는 자신(더불어 대중)이 가슴에 품었던 ‘할 말’을 과감히 표출함으로써 카타르시스까지 안기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기자라고 다 같은 기자가 아니다. 이 와중에도 세 영화의 기자들은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인다.


먼저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감독 정기훈)에서 사회 초년생인 도라희(박보영)는 전쟁터 같은 언론사에 연예부 수습기자로 입사해 매일같이 예상치도 못한 생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열정”을 외치는 하재관 부장(정재영)이 있다. 현대의 무기력한 청춘들에게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단어인 ‘열정’은 그 느낌만으로도 자극적이고 왠지 모를 흥분을 유발한다.


하지만 도라희는 처음의 두 주먹 곱게 쥐고 외쳤던 희망에 찬 세 번의 “열정”이 천 번, 만 번의 열정으로 늘어나며 자신의 멘탈을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올가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이는 진짜 열정의 의미를 몰랐을 때의 얘기다. 입사 초반 실수 투성이던 도라희는 정기자로 숙성되는 과정을 겪고 나서야 하재관 부장이 늘 자신에게 외치게 했던 열정의 선작용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열정’이라는 호(號)가 붙기까지 도라희의 기자생활 적응기는 일반 취준생과 사회 초년생을 위한 지침서로 통하기도 한다.


짬 좀 찬 기자의 일상은 안녕하실까? ‘특종: 량첸살인기’(감독 노덕)의 사회부 열혈기자 허무혁(조정석)은 우연히 살인사건과 관련된 한 제보를 접하곤 일생일대의 특종을 터뜨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 허무혁에게 어째 일이 너무 술술 풀린다 싶더니 그의 야심찬 보도는 오보였다. 게다가 ‘량첸살인기’라는 소설과 허무혁이 보도하는 대로 실제 살인이 벌어질 위기가 그를 패닉 상태로 몰고 간다. 기자라면 누구나 특종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기 마련이지만, 허무혁은 특종에 눈이 멀었던 나머지 대중에게 사실관계를 고하기 이전에 자신의 커리어를 걱정한다.


진실을 보도해야 할 기자가 왜곡된 진실을 덮는 수준도 아니고, 일장 설파까지 해야 할 판이니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의 도라희와는 다른 차원으로 멘탈이 붕괴된 허무혁이 길에서 입간판을 발로 뻥 차며 가스 불에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타닥타닥 몸부림치는 모습은 가히 가관이다. 이와 함께 영화는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사실로 취하는 우리들은 우매한 대중일 수밖에 없고, 어쩌면 진실은 실재하지 않는 가공된 허상인 경우가 훨씬 많을 수도 있겠다는 논점을 제시한다.


한편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대한민국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의 일원으로 은밀하게 활동한다. 하지만 간계로 정경유착을 종용하고 돈과 권력, 여자에 취한 그의 음탕하고 이중적인 사생활은 혐오감을 자아낸다. 비자금과 성접대라는 은밀한 거래의 판을 짜는 설계자로서 내부자들의 중축 역할을 하는 이강희는 이미 기자의 가오는 져버린 지 오래고, 국민을 우롱하는 사기꾼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대중에게 고급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피눈물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는 ‘열정같은’ 도라희, ‘특종’ 허무혁과는 정반대로 이강희는 기자라는 커리어를 악용해 자신의 배를 채울 요량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어느 순간 진실을 은폐하려는 허무혁과 이강희의 모습이 교집합으로 그려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진실과 거짓은 어찌 보면 한 순간의 마음가짐으로 전복될 수 있는 종이 한 장 차의 개념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허무혁과 이강희가 매우 다르게 보여지는 건, 죄책감의 유무 여부일 것이다. 허무혁은 연신 괴로움에 머리를 싸맨다. 반면 이강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미묘한 소안(笑顔)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그의 여유로운 자태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기자라고 마냥 촉새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부(部)와 경력, 그리고 마음가짐에 따라 전혀 다른 일상을 그릴 수도 있다. 문득 2002년 월드컵을 겨냥한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슬로건이 떠오른다. 아무리 다른 형태로 일을 하고 성격도 천차만별이라 한들, 기자는 소위 곤조(根性)가 있어야 기자라는 말이 있다. 각종 좌절로 무기력해진 현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자정신과 비슷한 악바리 근성이겠다. 그렇게 최근 한국 영화 속 ‘기자’들은 일순간 정열은 넘치지만 열정은 부족한 이들을 꼬집는 매개체로 매우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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