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재명 ‘제왕적 대표’ 꿈꾸나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9-10 10: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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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지구당 부활’ 논의가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부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일 여야대표회담에서 지구당 부활에 의기투합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 문제가 지금 이 시점에서 두 사람이 서로 손잡고 함께 추진해야 할 만큼 절박한 문제인지도 의문이거니와 그 방향이 옳은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전날, 국회에서 국민의힘 윤상현·민주당 김영배 의원의 공동주최로 ‘지역당 부활과 정당정치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동훈 대표는 “서로 당리당략이라든가 정무적 유불리가 있을 수 있는데도, 지구당 부활이 대한민국 정치를 복원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구당 부활은 대한민국의 정치를 더 개혁하고 시민이 더 참여하게 하는 새 정치의 장이 될 것이고, 제도도 더 건강하게 운용될 것”이라고 가세했다.


그러나 지구당 부활이 ‘정치 복원’이라는 한 대표의 발언이나 그것이 ‘새 정치’라는 박 원내대표의 발언에 동의하기 어렵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구당 부활’에 대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극 제왕적 당 대표를 강화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오 시장은 2004년 지구당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개정을 주도했으며, 당시 개정된 법 조항들은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린다.


지구당은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설치된 중앙정당의 하부조직으로, 상시 사무소를 운영해 당원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무소 임대료와 인건비, 운영비 등이 들어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2002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기업들에서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런 지구당을 운영하기 위해 지역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오세훈 시장은 “과거 지구당은 지역 토호의 온상이었다. 지구당 위원장에게 정치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 지방의원을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그들은 지역 이권에 개입했다”라며 “선거와 공천권을 매개로 지역 토호-지구당 위원장-당 대표 사이에 형성되는 정치권의 검은 먹이사슬을 끊어내고자 하는 것이 ‘오세훈법’ 개혁의 요체”라고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폐지된 지구당을 부활한다니, 그것도 마치 그것이 ‘정치개혁’인양 포장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여야 당 대표가 이 문제에 의기투합한 것은 다른 속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당 대표는 원외 위원장들을 사실상 손아귀에 거머쥘 수 있다. 한동훈 대표나 이재명 대표 모두 최근 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만큼 당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가는 ‘제왕적 대표’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작용했을 것이고,


하지만 지구당을 만들면 이처럼 당 대표가 당을 장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세훈 시장도 이런 질문을 양당 대표에게 던지고 있다.


정치의 주인인 국민 역시 지역 토호세력이 발호하는 지구당 부활에 부정적이다.


그러면 대안은 없는 것인가.


오 시장은 10일 페이스북에 올린 '정치개혁, 좌표가 분명해야 합니다'라는 글에서 “미국식의 원내정당 시스템”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여야대표가 함께 추진하려고 하는 지구당 부활은 어떤 명분을 붙이더라도 돈 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라며 "정치개혁에 어긋나는 명백한 퇴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세훈법에 대해선 "단순히 돈 정치, 돈 선거를 막자는 법이 아니었다"라며 "제왕적 당 대표 시스템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한국 정치의 정쟁성과 후진성에서 벗어나 미국식의 원내정당 시스템으로 변화해보자는 기획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원내대표가 당을 대표하며 입법 이슈로 당을 이끌어가고, 우리처럼 온갖 사회 이슈를 의회로 끌어들여 갈등을 증폭시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라며 "그런 점에서 오세훈법은 여전히 미완의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을 핑계로 다시 유턴해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냐. 지금은 지구당 부활이라는 역행이 아니라, 원내정당이라는 발전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구당 폐지법안을 주도했던 그의 고뇌를 정치권이 먼저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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