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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여야 원외 위원장들을 만나면 그들은 한결같이 지구당 부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솔직히 그들의 고충을 생각하면 지구당 부활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인간적인 관계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의적인 관점에서 그게 옳은지 의문이다.
국민도 지구당 부활에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18세 이상 남녀 1005명에게 전화 면접 조사한 결과,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로 설치하는 중앙 정당의 하부조직인 지구당 부활에 대해 ‘찬성한다’ 20%, ‘반대한다’ 46%, 모름/무응답 33%로 나타났다.(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 3.1%포인트이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그런데도 정쟁을 거듭하던 여야 당 대표가 2004년 폐지된 지구당 부활에 대해선 유일하게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어 20년 만에 지구당 부활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지난 1일, 여야 대표회담에서 국민의힘 한동훈·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견이 가장 적다고 입을 모은 사안은 '지구당 부활'이었다.
공동 발표문에도 적극적으로 협의하기로 명시하면서, 최근 양측이 모두 참석한 토론회까지 열렸다.
지구당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로 설립된 중앙 정당의 하위조직으로, 1962년 정당법 제정 때부터 도입됐다. 지구당은 당원 관리 외에도 중앙당-지역을 연결해 여론을 수렴하고 맞춤형 지역공약을 개발하는 역할도 했다. 또 지구당 사무소는 평소에는 당원 교육 및 의견 수렴 장소로, 선거기간에는 선거사무실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무소·유급 직원을 운용하기 위한 비용이 문제가 됐다. 수도권 지구당은 매달 1000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운영비를 책임지는 지구당 위원장의 정경유착 가능성 및 권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했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이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차떼기’ 사건을 일으킨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후 선거자금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거세지며 일명 ‘오세훈법’에 의해 2004년 폐지됐다.
그런데 왜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는 국민이 그토록 반대하는 지구당 부활에 의기투합한 것일까?
지역구에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현역 의원과 그렇지 못한 신인·청년·원외 정치인의 격차를 벌린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과연 그게 전부일까?
명분은 그렇지만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개연성이 다분하다. 실제로 여의도 정가에선 원외 인사들의 지지를 끌어안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내 기반이 취약한 한동훈 대표는 특히 지난 총선에서 대거 낙선한 수도권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지지를 모을 수 있고, '당원 중심주의'를 앞세워온 이재명 대표도 당 장악력을 더 공고히 하면서, 대선까지 영남지역 등 험지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양당 대표 모두 사실상 제왕적 대표가 되는 셈이다.
결국, 지구당 부활은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강행해야 할 양당 대표의 '차기 대권'이라는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건 민생 행보도 아니고,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도 아닌 만큼 일단 재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 양당 대표가 의기투합해 이를 강행하려 하면,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고 그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시절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지구당을 폐지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권의 지구당 부활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은 그런 연유다.
실제로 오세훈 시장은 최근 본인의 페이스북에 ‘지구당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극 제왕적 당 대표를 강화할 뿐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오 시장은 여야대표회담에서 합의한 '지구당 제도 부활'을 두고 "어떤 명분을 붙이더라도 '돈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라며 "이는 정치개혁에 어긋나는 명백한 퇴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야 모두 이 같은 오세훈 시장의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여야 당 대표의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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