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의 민주적 전환: 토큰 주의를 넘어 참여적 거버넌스로”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5-09-14 1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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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겸 전 한국외대 철학과 겸임교수



정책은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대한 결정이기에 주민 공감대 형성은 정책 정당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정책을 미리 결정한 뒤, 주민 반발이 일어나면 뒤늦게 형식적인 주민 공청회를 열어 마치 참여 절차를 거친 것처럼 포장한다. 이는 사실상 사후약방문식 행정행위이며, 1960~70년대 관료주의적 행정모형(관치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퇴행적 모습이다.


행정학적으로 이는 ‘관료적 엘리트주의’와 ‘Top-Down 정책 결정 모형’의 전형적인 한계이다.

 

위에서 정책을 정하고 아래로 하달하는 방식은 주민을 정책의 주체가 아닌 단순한 객체로 취급한다. 이는 현대 행정이 추구하는 ‘참여적 거버넌스(governance)’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주민이 정책 과정에서 단순히 불려와 설명만 듣는 구조는 토큰 주의(tokenism) 수준에 불과하다.


아른스타인(Arnstein)의 「시민참여의 사다리」에 따르면, 이러한 공청회는 ‘시민 권한 위임’이 아니라 단순한 형식적 장식일 뿐이다. 진정한 참여는 정책 형성 단계에서부터 집행과 평가까지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공유하는 것에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대표적인 사례가 교도소 유치 갈등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교정시설 이전·신설을 결정하면서 지역주민의 의견을 사전에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결과, 해당 지역에서는 거센 반발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안전과 집값 하락”을 우려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정책은 장기간 표류하거나 결국 철회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 이는 단순히 ‘주민 반발’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공론 형성을 무시한 결과로서 정책 집행 비용과 사회적 갈등 비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각종 혐오시설(NIMBY 시설) 유치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정부는 지역 발전이나 공익성을 앞세우지만, 주민들은 사전 논의 과정이 배제된 채 정책이 일방적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우리 지역만 희생양이냐”는 불신과 분노를 표출한다. 행정은 갈등을 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행정학에서는 이를 정책 실패의 대표적 원인으로 분석한다. 사전 주민참여가 부재한 정책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고, 정책의 실효성과 집행 가능성까지 무너진다. 반대로 주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합의적 정책 결정과 ‘참여적 거버넌스’ 체제에서는 갈등 비용을 줄이고 정책에 대한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주민 공청회라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숙의민주주의에 기반한 실질적 참여 제도이다.

정책 결정 전에 주민과 충분히 토론하고, 대안적 방안과 보상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정은 계속해서 정책 불신→주민 반발→사회적 갈등 비용 증가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다. 결국, 주민 의견 수렴 없는 정책 결정은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반쪽짜리 행정이다. 구시대적 관치행정을 벗어나, 주민을 동등한 정책 파트너로 인정하는 참여적 거버넌스 체제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행정은 국민으로부터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낡은 권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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