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은 ‘앙시앵 레짐’을 폐기하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08-18 12: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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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취임 한 달을 앞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8일 취임 후 처음으로 고위 당정협의회에 참석한다.


이른바 '한동훈 표' 정책을 올리는 무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한 대표는 의욕적으로 자신이 구상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등 정책 주도권을 부각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앙시앵 레짐’을 전면 폐기하는 것이다.


앙시앵 레짐은 프랑스 혁명 때 타도의 대상이 된 구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프랑스 루이 14∼16세 시대 절대왕정체제에선 절대군주가 소수의 승려, 귀족 등과 결탁하여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농민과 시민을 억압하는 정치 질서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앙시앵 레짐은 국민의 분노를 촉발했고,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타도되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뜬금없이 18세기 후반 이런 프랑스 부르봉(Bourbon) 왕조의 앙시앵 레짐을 전면폐기하라니 의아하게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한동훈 신드롬’은 물론 한 대표 개인에 대한 지지도 있지만, 그보다는 구체제(앙시앵 레짐)에 대한 반발과 변화를 요구하는 당원과 국민의 열망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열망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면, 즉 신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면 한동훈 체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동훈 체제의 실패는 곧 보수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보수가 주류였던 대한민국에서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세 차례 연속 패했다.


특히 지난 총선의 참패로 좌우 양 날개 중 왼쪽 날개는 비대해지고 오른쪽 날개는 쪼그라져 제대로 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정치에서는 민주당이 주류가 됐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 한동훈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은 보수의 재건을 위해 앙시앵 레짐을 전면 폐기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보수가 주류다. 자신을 '보수'라고 인식한다는 응답자들이 ‘중도’라거나 ‘진보’라고 응답한 자들보다 많다.


그런데 보수가 왜 총선에서 패배했을까?


국민의힘이라는 보수정당이 보수 지지층을 대변하지 못한 탓이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줄어든 탓이 아니라 정당이 지지층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해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말이다. 수도권이 사실상 국민의힘의 '험지'가 되면서고, 여당은 이른바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한 것은 이런 연유다.


그런데도 구체제를 유지한다면 백전백패다.


보수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한동훈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줄곧 ‘변화’를 외쳐왔고, 그런 말에 당원과 국민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것이 어쩌면 보수정당의 대표인 한동훈 대표를 향한 시대적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의도연구원장에 유승민계 유의동 전 의원을 앉힐 걸 보면 실망이다. 정말 한 대표에게 앙시앵 레짐 폐기를 기대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물론 한 대표가 비대위원장 시절에 정책위의장을 지낸 유의동 전 의원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다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총선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제대로 된 정책을 비전으로 제시한 바 없다. 그것이 총선 패인의 결정적 요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도 패인으로 지목되지만, 정책 부재는 그보다 더 아픈 대목이다. 그런데도 유의동 전 의원을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한 걸 보면, 한 대표에게 신체제를 구축할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서 믿고 쓴다는 게 한 대표의 생각이라면, 국민의힘은 한동훈 체제 출범에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런 체제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소수의 측근과 결탁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의 구체제는 타파대상이다. 신드롬을 등에 업고 당선된 한동훈 대표는 기존의 당 대표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앙시앵 레짐의 즉각적인 폐기를 선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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