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돈 봉투 90개’로 무너지나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4-16 13: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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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내년 4.10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 더불어민주당은 ‘돈 봉투 90개’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


지난 2021년 전당대회 과정에서 수천만 원 규모의 돈 봉투가 살포됐다는 의혹인데, 특히 현역 의원이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20명까지 연루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민주당은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다.


대체 민주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발단은 송영길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다. 그는 지난 12일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실형을 받았는데, 그의 휴대폰 포렌식 과정에서 돈 봉투 의혹 관련 녹취록을 확보한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정근 게이트’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전당대회 당시 돈 전달 과정에 관여한 공모자로 지목된 윤관석·이성만 의원,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 송영길 전 대표 보좌관 박 모씨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수색 영장을 보면 검찰은 불법 자금의 총 규모를 9400만 원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6000만 원, 전국의 대의원과 권리당원에 1400만 원, 지역·캠프 사무실 상황실장에게 2000만 원 규모의 돈 봉투가 뿌려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5·2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송영길 대표가 사실상 불법적으로 당 대표 자리를 강탈한 셈이어서 당내 갈등이 폭발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당시 전당대회는 송영길 전 대표와 홍영표 의원의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홍 의원은 40%가 반영되는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이겼지만, 45%가 반영되는 전국대의원 투표에서는 송 전 대표가 간발의 차이로 앞서면서 최종 0.59%p의 미미한 차이로 승리했다.


돈을 살포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홍영표 의원은 '돈 봉투' 파동으로 당대표직을 빼앗긴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돈 봉투’의 힘으로 당 대표가 된 송영길은 줄곧 이재명과 ‘밀월 관계’를 이어왔고, 대선 후보 경선 때에는 당내에서 ‘이심송심’(李心宋心)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른바 ‘이재명 송영길’ 역할 분담설이 급부상한 것도 그때다.


한마디로 불법적으로 당 대표가 된 송영길이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재명을 도와 그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게 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재명 대표 체제의 정당 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되지 못했더라면 그가 당 대표로 선출되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민주당이 갑자기 자체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1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부 논의를 마친 뒤 다음 주쯤 당내 기구를 통해 ‘돈 봉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겉으로는 ‘진상규명’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사실은 송영길과 이재명이 연계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게 민주당의 습성이기도 하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당 당헌·당규의 위기대응 매뉴얼 제1조는 ‘일단 모르쇠로 일관한다. 다음 개인 일탈로 몰아간다’ 아니냐”라며 “일만 터지면 꼬리 자르기부터 하는 것이 민주당의 관습헌법이 됐다”고 꼬집은 것은 이런 연유다.


실제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게이트 관련 의혹을 “유동규 개인의 일탈”이라며 자신과의 연관 가능성을 일축했고, 송영길 전 대표 역시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며 자신은 도의적 책임은 느끼지만,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송영길 후보가 이정근 꼬리 자르기에 나섰듯, 송영길을 ‘꼬리 자르기’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송영길 전 대표는 원내 제1당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귀국 즉시 구속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민주당 내 소신파를 중심으로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 후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자업자득이고 사필귀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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