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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이영란
매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대한민국은 이념적 균열로 몸살을 앓는다. 한쪽은 ‘최저임금이 민생’이라며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지불 능력의 한계’를 호소하는 주장이 충돌하면서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현실이다.
실제 관련 기사에 달린 ‘노력해서 몸값을 올릴 생각을 해야지, 꼬우면 기술이라도 배워라’라는 거친 대응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개인의 소득은 역량과 노력 등에 비례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시장경제 상식이 대중심리에 자리 잡은 탓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러한 도덕적 당위론이 경제가 구동되는 시장 원리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능력주의의 가면을 쓴 각자도생’ 비판 논리로 필수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하한선이 지켜져야 한다는 강변이 나온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국가 재정으로 지급하는 복지 수당이 아니다. 고용주가 위험 부담을 안고 지불해야 하는 ‘노동의 가격’이다. 최저 임금이 복지적 관점이 아닌 ‘노동 생산성’을 기준으로 결정돼야 하는 이유다.
특히 숙련도가 낮고 진입 장벽이 낮은 일자리의 임금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면 시장이 부작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도 걸 우리는 이미 목격한 바 있다. 과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소비 진작이 아닌 ‘단기 일자리의 증발’로 이어지는 현장 말이다. 매장마다 무인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이 아르바이트 생들을 대신했고, 고용주들은 주휴수당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알바’를 양산했다. 번지수 틀린 노동계의 과도한 요구가 청년과 고령층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고용 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해 버린 것이다.
최근 대규모 총파업을 예고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업들은 돈이 넘쳐나는데 양보를 강요한다”며 부동산 쇼핑족의 풍요와 저임금 노동자의 얇은 지갑을 대비시켰다.
‘버틸 수 없다’는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대기업의 핑계로 치부하며 거대 자본의 악(惡)으로 돌린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양 위원장은 ‘자영업 생태계의 본질을 외면했다’는 추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양 위원장이 지적한 ‘돈이 넘쳐나는 기업’은 대기업이다. 이미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임금을 주고 있는 대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받을 타격은 거의 없다.
반면 우선 당장 폐업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골목길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처지는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의 절대다수를 고용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라.
결국 ‘대기업이 돈을 벌었으니 골목길 식당 주인이 임금을 대폭 올려 달라’는 주장은 모순이다. 과당경쟁 구조 속에서 소상공인에게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폐업의 벼랑 끝으로 떠미는 처사다. 실질적 지불 능력이 무너진 자영업자에게 임대료와 구조적 개혁이라는, 비현실적인 처방전만 들이밀며 희생 감내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노동계 스스로가 돌아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의 가격 신호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진짜 상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정 직무의 임금이 최저 수준에 머무는 건 대체 인력이 공급과잉 상태인 현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를 무시하고 ‘총파업’으로 압박하는 민주노총 투쟁 방식은 예고된 실패라는 점에서 재고돼야 마땅하다. 더 이상 물리적인 압박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 정치가 경제법칙을 이길 수 없다는 순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목청 높여 을러대면 시장은 고용 축소로 보복에 나선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다.
더욱이 민주노총은 대기업·공공기관의 고임금 노동자들이 주축인 세력이다.
정작 해고 위기 앞에서 파업할 수 있다는 권리를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편의점 알바생이나 청소 노동자들에 비하면 귀족의 지위를 누리는 존재들이다.
그런 기득권 노조가 취약계층의 이름을 빌려 파업을 벌이는 현실이,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탐욕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경제는 철학이 아니라 과학이고 실전이다.
최저임금을 지불 능력의 마지노선으로 철저히 관리하는 노력을 병행하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국가가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나 직접 복지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책임질 수 있도록 사회적 함의를 모아가야 한다.
자영업자의 고혈을 쥐어짜 최저임금이나 시급을 올리는 것도 진정으로 취약계층을 위하는, 상생이 아니다. 최저임금 논쟁을 ‘상생과 공존을 위한 철학적 선택’이라는 거창한 수사로 포장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마땅하다.
또한 바닥 구조를 단단하게 다지는 길은 자영업자의 고혈을 짜내어 노동자의 시급을 올리는 임기응변이 아니다.
시장의 법칙을 존중하면서 기업이 일자리를 유지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개인이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양극화의 위기를 넘는 가장 견고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철학이다.
이제는 교조적인 선의와 투쟁의 붉은 띠를 벗어던지고 경제학의 준엄한 원칙 앞으로 돌아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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