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 '살펴서 대피'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6-10-26 15:05:14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경기 화성소방서 생활안전팀장 박병진


아파트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밖으로 뛰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재 인명피해는 오히려 대피하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불이 나면 가장 먼저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불길이 아니라 연기다. 뜨겁고 유독한 연기는 계단실을 타고 순식간에 위로 올라간다.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현관문을 열고 나선 순간, 연기가 가득 찬 계단실에 갇히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소방은 이제 ‘무조건 대피’가 아닌 ‘살펴서 대피’를 강조한다. 불이 난 위치와 우리 집의 상황을 먼저 살피고, 그에 맞는 방법으로 대피하자는 것이다.


‘살펴서 대피’의 핵심은 우리 집으로 불길과 연기가 들어오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연기는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불이 우리 집과 같은 층이거나 바로 아래층에서 났다면 연기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다만 급박한 상황에서 불이 정확히 몇 층에서 났는지 알기는 어렵다. 결국 현관이나 창문 틈으로 연기가 들어오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기준이다.


다른 세대에서 불이 났다면 무작정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보다 먼저 상황을 살펴야 한다. 집 안으로 불길과 연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창문을 닫고 젖은 수건으로 문틈을 막은 뒤, 119에 신고하고 집 안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안전하다. 연기가 찬 계단실로 섬불리 나섰다가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불이 났다면 망설일 시간이 없다.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대피한 뒤 119에 신고해야 한다. 이때 문을 꼭 닫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연기가 계단실과 이웃 세대로 퍼지는 것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문제는 현관 쪽에서 불이 나 밖으로 나갈 수 없을 때다. 이럴 때 생명을 지켜 주는 것이 세대 내 피난시설이다. 방화문으로 구획된 대피공간에서 구조를 기다리거나, 경량칸막이를 부수고 옆집으로 이동할 수 있다. 아파트에 따라 하향식 피난구나 완강기가 설치된 곳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설도 있는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실제로 경량칸막이 앞에 수납장을 두거나 대피공간을 창고처럼 쓰는 가정도 적지 않다. 연기 속에서 처음 찾아보는 피난시설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연기가 문틈으로 스며드는 순간, 어디로 피해야 할지 바로 떠오르는가. 베란다 경량칸막이, 대피공간, 옥상 출입문. 우리 집 이야기인데도 선뜻 답하기 어렵다면, 오늘 가족과 함께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자. 그것이 살펴서 대피의 첫걸음이다.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이다. 날씨가 추워지며 난방기구 사용이 늘어나는 만큼 화재 위험도 커진다. 이번 달만큼은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 집 현관과 베란다를 살펴보기를 바란다. 오늘 미리 살핀 5분이 위급한 순간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힘이 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주요기사

+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