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車可鑑의 정치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3-12 17: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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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승 편집국장 대행 ‘앞의 실수를 거울로 삼는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전차가감(前車可鑑)이라는 말이 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문후(文侯)가 어느 날 말단 관직에 있는 불인(不仁)이라는 사람을 시켜 연회를 마련하도록 했다. 여러 대신들을 연회장에 초청한 문후는 이런 제안을 했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있으니 재미없구려. 어디 내기라도 걸어서 지는 사람이 벌주로 큰 잔 하나씩 마시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대신들도 모두 찬성했다. 그런데 맨 처음으로 문후가 벌칙을 받게 되었다. 대신들은 차마 용기가 없어서 ‘어물어물’하고 있는데 말석에 앉아있던 불인이 서슴지 않고 문후 앞으로 다가섰다.

불인은 당돌하게도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이 술잔을 받으십시오”하며 큰 대접에 술을 잔뜩 따라 문후 앞으로 내밀었다.

문후는 ‘힐끗’ 곁눈질로 불인을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시침을 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나 불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위의 대신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난감해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보다 못해 한 대신이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우리 천자께서는 이미 과음을 하신 셈인데 그렇게 큰잔을 강권해서야 쓰겠는가.”

이 때에 불인이 “전차(前車)의 복철은 후차의 감(鑑)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전례에 비춰서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뜻인 줄 압니다. 지금까지 왕께서 법을 만들고 그 법이 금방 지켜지지 않는 선례를 만든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깊이 생각하시고 마땅히 받아야할 벌주라면 받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비록 부드러운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뼈 있는 강직한 말이었다. 문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과연 옳은 말이로다”하고 손을 내밀어 잔을 받아 마셨다.

지금 박근혜 의원 탈당으로 촉발된 한나라당 내분이 점차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주류 중진 김덕룡 의원의 탈당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포기한 홍사덕 의원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회창 총재의 당무 퇴진과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공식 요구하는 등 이총재의 리더십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홍의원은 ‘불공정 경선 시정’ 등 자신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강력하게 표출했다. 이부영 부총재도 기자간담회를 갖고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기 위해 총재단 전원 사퇴 후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하자고 거듭 주장했다. 심지어 주류로 분류되던 최병렬 부총재까지도 현재 전개되는 당내 사태에는 이총재측에 일정부문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모습은 과거 이회창 총재가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 뛰어들면서 당시 당총재였던 YS를 겨냥해 했던 말과 흡사하다.

전차가감(前車可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자신이 벌주를 받아할 처지에 있을 때는 규칙을 적용하지 않고 타인이 벌주를 받을 때에만 적용하는 규칙이라면 의미가 없다. 경선은 어디까지나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점에 있어서는 민주당도 예외일 수가 없다. 금권-타락-혼탁선거가 이어질 경우, 결코 국민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이것이 ‘전차(前車)의 복철은 후차의 감(鑑)’이라는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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