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자에서 춤을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10-07 16:52:54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극단 76단의 두번째 번역극 사회성이 짙은 연극을 선보였던 극단 76단이 지난 7월 문제작 ‘로베르토 쥬코’에 이어 두 번째 번역극 ‘루나자에서 춤을’을 공연한다. 이 작품은 오케이, 베케트를 잇는 아일랜드의 세계적인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의 사실주의 희곡.

‘루나자에서 춤을’은 발리벡이라는 작은 시골에 살고 있는 다섯 자매의 몰락해 가는 가족상을 정교하고 세밀한 무대로 그려냈다.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사는 삶의 모습을 다섯 자매의 세심한 심리묘사로 나타낸다.

무대는 1936년 여름 아일랜드 도네갈 주의 발리백. 시집도 못간채 늙어가고 있는 다섯 자매의 일상을 조카 마이클이 회상한다. 집안의 유일한 봉급 생활자로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는 마흔의 케이트.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둘째 메기, 하루종일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그네스, 모자란 듯 보이는 서른둘의 넷째 로즈, 자매중 유일하게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고 그로 인해 사생아를 낳은 크리스.

온종일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그녀들의 생활에서 활력소는 고장난 마르코니(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아이리쉬 춤곡에 맞춰 춤을 추는 일. 다섯 자매는 새로운 일상을 꿈꾸지만 그녀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고 그나마 여름마다 열리는 루나자 축제에서 뭇남자들과 어울려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번번이 맏언니 케이트의 종교적인 가치관을 이기지 못한다.

어쩌다 마이클의 아버지 게리가 오는 날이면 그녀들은 설레임에 부산을 떨고 멀리서 게리를 쳐다보아야만 하는 셋째 아그네스의 시선은 슬프기만 한다. 목사였던 오빠 잭은 아프리카에서 선교 생활을 하다가 반미치광이가 돼 돌아오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남자의 역할도 하지 못한 채 동생들에 의지해 살아간다.

마을의 목사직을 수행할 수 없던 오빠로 인해 케이트는 교사직을 잃게 되고 아그네스와 로즈의 손뜨개질도 새로 들어온 공장에 밀려 일감도 없어지게 된다. 근근히 먹고 살기에도 힘든 다섯 자매의 삶은 나아질 것이 없이 흘러간다.

어린 마이클은 행복할 것 하나 없는 그 시기를 슬프지 않게 바라본다. 이모들의 사랑속에 커왔던 그 시절의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고 그녀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알게 된다.

종교라는 껍데기에 의지한 채 살아간 케이트, 두 번 이혼한 뚱뚱한 남자라도 좋은 메기, 바람둥이 남자에게 사랑받는 것도 행복한 로즈 등 이들 자매가 살아가면서 필요했던 것은 자신들을 이끌어줄 삶의 어떤 중심이었다. 중심 없는 삶을 살아간 이들은 외딴 시골에서 낙오된 채 쓸쓸이 생을 마감한다.

근래에 보기 힘든 약 세시간의 사실주의 연극이지만 인생을 관조하는 깊이 있는 내용과 진지한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엔 부족함이 없다. 13일까지 대학로 상명대 소극장.
/문향숙기자 cult@siminnews.net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