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5-05 17: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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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란 정치행정팀장 {ILINK:1} 세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40대가 사회의 주류로 부각되는 등 386세대의 정치권 진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3김시대’의 퇴장과 50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정치권의 세대교체 파고를 높이면서 정치판의 밑그림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40대 일색으로 당선자를 배출했던 4.24 재보선 결과 역시 내년 총선의 대대적인 ‘물갈이설’을 뒷받침해주는 정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17대 총선에서 ‘나이’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공공연히 돌고 있다.

이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선거전에서 기득권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야 중진 및 노장년 정치인들이다.
특히 세대교체론을 앞세우고 나선 30·40대 정치신인들의 도전을 받고 있는 60세 이상 의원 외 지구당위원장들의 고민은 더 극심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정치권은 ‘연륜과 경륜’이 정치인의 자질 중 으뜸 덕목으로 내세워졌던 상식이 무리없이 통했었다. 흐르는 세월만으로도 일정량의 권위는 자동적으로 세워졌다. 상당수 다선 의원들이 무리없이 재선 삼선에 도전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 역시 ‘나이’였다.

경륜으로 인해 터득된 ‘풍부한 노하우’야말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데 한 몫 단단히 할 수 있는 호재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남보다 적은 나이로 선거전에 나선 후보는 댓바람에 따라붙는 ‘설익었다’는 평가로 불이익을 받았던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나이’ 때문에 기존 정치권이 좌불안석이라니 세상이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려장’ 이야기 한편이 떠오른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를 버려야하는 풍습을 지키지 않으면 엄벌을 받는다는 나라 법을 어기고 자신의 노모를 차마 버릴 수 없어 집안에 감추고 봉양을 계속했던 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어쩌다가 군주가 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가 됐다. 하지만 7순 노모의 지혜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 화를 면하게 됐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다.

만약 노모가 아니었다면 그 아들은 어떻게 됐겠는가. 우리에게 있어 과거의 의미가 ‘그냥 내다 버리면 되는’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이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이’라는 절대적인 잣대 하나만 갖고 ‘과거’의 퇴출을 강요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풍부한 경륜에서 터득된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는 ‘과거’라면 어설픈 ‘현재’보다 백 배 낫지 않겠는가. 세대교체도 좋고 물갈이도 좋다.

그러나 유행따라 흐르는 정치가 아니라면 내년 총선에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치능력 점검’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퇴출이든 용퇴든 결정지어도 결코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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