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저만치 기억품은 부유의 흔적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5-06 16:59:06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김명희씨 ‘流轉의 역동성’展 기억의 어둠에서 시나브로 돋아나는 아이들, 먼이역의 자작나무 숲에서 망향의 꽃을 따는 소녀들….

화가 김명희(54)씨는 현실과 상상의 이중성, 현재와 과거의 통시성을 한 화면에 아우르며 작업해왔다.

주제는 ‘유전(流轉)’.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부유하는 삶을 은유와 상징기법으로 표현한다. 떠도는 것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포함한다.

김씨는 오는 13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유전의 역동성’전에 그동안 제작한 칠판화를 내놓았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은 칠판화 전시회는 1995년 이후 8년만이다. 김씨가 칠판화를 시도한 것은 1990년 소양강댐 인근의 폐교에 입주하면서였다.

행정구역상 강원도 춘성군 내평리로, 하늘만 빤히 열린 오지 마을이다. 그는 17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이자 화우인 김차섭씨와 함께 이곳으로 흘러들었다.

그는 교실 네 칸의 이 분교를 사들여 새로운 예술의 보금자리를 틀었다.

자신과 남편이 한 칸씩 작업실로 쓰고, 나머지 두 칸은 거실과 창고로 사용한다. 김씨는 어린이들이 떠난 이 폐교의 칠판에서 환영으로 남아 있는 어린이들을 발견했다. 이는 떠돌이나 다름없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묘하게 겹쳤다.

이후 그는 칠판을 캔버스 삼아 본격 작업에 들어갔다. “폐교의 칠판을 만나면서 나는 해빙기를 맞았다”며 감회를 털어놨다. 유년기에서 비롯한 유전의 의미는 민족적으로, 그리고 인류학적으로 확장됐다.

이번에 출품되는 칠판화는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로 이미지의 상징성을 극대화한다.

‘내가 결석한 소풍날’(사진)에는 유년기에 대한 상실의 은유가 나타나 있고, 자화상 ‘김치 담그는 날’에서는 아련하고 따스한 서정성이 느껴진다.

(02)734-6111.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