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5-08 17: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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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켁 ‘한국인 피살사건’ 배낭을 멘 내 모습을 본 서너명의 경찰관이 다가와 여권을 보여 달래서는 곧장 레닌 광장의 구석에 자리잡은 사무실로 데려가 4년전에 겪었던 경험을 그대로 복사하였다.

똑 같은 경험을 또 당하게 되니 석고처럼 굳어버린 내 얼굴은 도무지 부드러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알아서 뒤지다가 아무것도 없으면 보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여행경비인 달러만 왼손으로 꼭 쥐고는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배낭을 던져주어 버렸다.

결국은 내 손안에 든 달러를 책상 위에 펴보라고 말하는 경찰관의 늑대 같은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내가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달러를 세면서 절대로 내 손을 건드리지 말라는 단호한 말에 몇 푼 없는 달러를 보고 나서야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어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가도 좋다는 말을 했다.

알마타에서 출발하면서 대부분의 여행경비를 라야에게 맡기고 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분명 여기서도 달러를 빼앗겼을 것이 당연했다.

한나라의 수도라기에는 인구 백만명 정도 밖에 되지 않고 그것도 최근에 들어온 외국인까지 합해서 이 정도니 알마타가 복잡한 대도시라면 비슈켁은 조그마한 전원도시라고 할 수 있다.

비슈켁 또한 모든 것들이 낯익다.

레닌 광장을 등지고 시내의 오른쪽 끝에 위치한 오쉬 바자르까지 오후 내내 걸어다녔다. 알마타에 발하호까 바자르가 있다면 오쉬 바자르는 비슈켁을 대표한다. 너무 하다싶은 만큼 속으로는 몰라도 눈에 보이는 겉모습은 전혀 달라질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저녁도 먹을 겸 싱싱한 아가씨들이 몰려드는 카페를 찾아 살리마 고스띠니쪄를 나서는데 프론트 아줌마 밤에는 위험하니 가급적 나가지 말도록 권유하였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오늘 오후 비슈켁에 도착했을 때 내 배낭을 쥐잡듯이 뒤졌던 경찰관이 내가 여기에 도착하기 이틀 전에 한국인 피살사건이 두건이나 일어났다고 했던 그 권총사건 때문에 외출을 삼가도록 당부한 것이었다.

얽히고 얽힌 비즈니스 문제로 키르키스탄의 암흑가 사내에게 권총 피살을 당한 이 사건은 키르키스탄에서는 처음이었으며 센츄럴 아시아에서도 거의 7년 만에 일어난 대단히 큰 문제를 일으켰던 피살사건으로 한국인의 거만함에 제동을 건 살인사건이었다.

범인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음에도 이 사건은 지금까지 미궁으로 빠져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했다.

미묘하고 복잡한 그 무언가가 있나보다.

그만큼 외국인이 어둠침침한 야간에 외출을 하게되면 상당히 위험이 따르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저녁밥도 못 먹고 밤에 호텔에 혼자 있는 것은 더욱 싫증나는 일이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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