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5-20 19: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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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명성 찾기 힘든 침울한 거리 앞으로 그럴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를 받아두라는 나의 말에 스비에타의 가족들의 눈빛이 번득였다.

적극적인 개방정책으로 외국인의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지는 카자흐스탄이나 키르키스탄과는 달리 반대로 폐쇄적인 정책을 펴는 우즈벡키스탄은 그 옛날 실크로드의 중심지였고 구 소련시절까지만 해도 센츄럴 아시아의 맏형노릇을 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각 공화국에 걸인들이 득실거리는 타직크스탄이나 독재정치를 하고있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울하게도 어깨를 나란히 하게됐으니 당연히 사람들의 표정은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이다.

모든 식구들이 논이라는 빵에다가 차이한잔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손님이라며 나에게는 따끈따끈한 감자국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런 밥을 해서 주는데 미안한 맘 금치 못하겠다.

칙칙한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당연히 만사가 잘되겠지 하며 시작한 하루도 영 개운치가 않았다.

치르칙크의 오비르에 갔더니 외국인 등록은 여기에서 하지 않고 타슈겐트까지 나가야 된다며 퉁명스럽게 말을 하는 직원을 한번 째려보고는 버스를 타고 한시간 동안 달려가 도착한 타슈겐트 오비르 직원도 내 비자를 보자마자 비즈니스 비자로 왔기 때문에 초청회사의 서류를 가져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할 뿐 요지부동이었다.

관광비자로 왔으면 어느 정도 봐줄 수 있는데 비즈니스 비자는 자기로서도 어떻게 할 수 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깝깝하게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초청장을 발급해준 레사나는 전화연락이 되질 않아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었다.

나를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어디론가 휴가를 떠난 것이 틀림없었다.

레사나는 한국과 센츄럴 아시아와의 화물운송 업무를 보고있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 지마의 친여동생으로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앞이 캄캄했다.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오비르 직원의 말에 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라야도 상당히 난감해 하였고 뭐 때문에 비즈니스 비자로 들어왔나며 은근히 째려보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하루에 수십 달러씩 하는 호텔에서 그것도 라야을 놔두고 혼자 잠을 잘 수도 없는 형편이고 또한 그만한 돈도 없었다.

하여튼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툭툭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고 있으니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한국속담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라야를 도닥거리고 오비르 사무실을 빠져나오니 막상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잽싸게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서울을 출발하면서 혹 우즈벡키스탄 여행 중에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청할 두 사람의 연락처를 준비했는데 우선 김동렬 사장이 떠올랐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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