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나라당은 대선자금 정국의 ‘여론호도용’이란 비판 속에 당내 결속과 위기 탈출을 위해서라도 정치개혁 입법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나라당이 최병렬 대표의 ‘5대 개혁안’ 제시에 맞춰 중앙당및 개인 의원 후원회를 전면 폐지할 뜻을 밝히고 나선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 대표는 지구당 폐지논란에 대해 “지금 지구당은 고문, 부위원장, 자문위원, 여성위원, 홍보위원 등 조직과 동별로 협의회, 청년위, 여성위 등이 있으며 기간 당직자가 200-300명씩 있다”며 “완전 선거공영제가 되면 이런 조직들이 선거기간 맡아야할 역할이 없어져 지구당에는 상근자 2-4명만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지구당을 운영하려니 그 비용이 정말 만만치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따라서 지구당을 폐지하는 것은 부정부패 정치자금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지구당 폐지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전국 227개 지구당을 폐지하고 이를 지역별 당원 협의체 형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며, 우리당도 민주당 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폐지시기에 대해 양당은 분당 등 특수상황을 들어 일단 현행 정당법으로 총선을 치른 후에 17대 국회에서 하자는 입장이다. 또 한시적 지구당 유지가 불가피한 사유로 민주당은 사고지구당 정비를, 우리당은 중앙당 창당을 위한 지구당 조직 정비를 각각 들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당은 폐지해야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치권은 늘 이런 식이다.
정치권이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정치개혁을 미뤄 온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따라서 우리당과 민주당의 이런 변명은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당장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가장 보수적인 한나라당이 지구당 폐지를 선언하고 나선 마당에 민주당과 우리당이 주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또 기업 후원금에 대해 민주당과 우리당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도 못마땅하다.
물론 한나라당 최대표의 ‘법인세 1% 정치자금화’라는 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지적에는 일부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그의 말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민주당과 우리당의 당내 논의를 통해 추상적인 한나라당의 발표를 구체화시키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처럼 한나라당이 정치개혁 카드를 제시했다. 만일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비난을 받아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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