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足)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4-08-15 09: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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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김충환 발은 우리 몸에서 제일 고생을 많이 하는 신체기관의 하나다. 우리 몸을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고 위험한 곳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무거운 몸을 짊어지고 햇볕도 들지 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냄새나는 신발 속에서 묵묵히 참고 견딘다.

발은 건강을 나타내는 거울과 같다. 온몸의 신경이 발에 연결되어 있어 몸의 특정 부위에 이상이 있으면, 발의 특정 부위에 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몸이 아플 때 발을 마사지하고 경락에 지압을 하면 낫는 것은 그런 연유다.

발은 충성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충성심이 많은 사람을 ‘수족과 같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마음을 바로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믿을 수 있는 측근이란 뜻이다. 발은 거칠고 위험한 곳도 마다하지 않고, 먼저 들어가 상황을 살핀다. 돌에 부딪쳐 삐기도 하고, 유리조각에 찔리기도 하지만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고 다닌다.

발은 개척자다. 개인의 발자취는 개인 삶의 기록이고, 역사는 인류의 집단적 발자취를 의미한다. 피어리는 북극에 발자취를 남겼고, 힐러리경은 에베레스트에 족적(足跡)을 남겼다. 암스트롱은 달에 발자국을 남겼고, 파이오니아 호는 금성을 향해 날아갔다. 인류는 발자국을 남기

나이가 들수록 발의 중요성은 점점 커진다. 노인들은 발에 이상이 생기면 급속히 기력이 떨어진다. 바깥 나들이는 물론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어 몸을 돌볼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 노인의 경우, 발을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발에게 사람들은 적절한 대접을 하지 않는다. 얼굴이나 손을 매일 씻고 화장까지 하지만, 발은 허드렛물에 씻고 헌 수건이나 걸레로 대강 닦는다. 그리고 남들에게 보이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긴다.

발은 예쁘고 귀여운 기관이다. 어린아이들의 조그만 발을 보라. 얼마나 앙증맞고 귀여운가. 그러나 자라면서 발을 잘 다듬지 않고 함부로 하기 때문에 변형이 되고, 굳은살이 박히고, 거칠어지게 되는 것이다. 무좀이나 티눈으로 인해 피부가 벗겨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며, 땀에 젖어 냄새가 진동하게 되는 것이다. 왕자가 주인을 잘못 만나 거지꼴이 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발은 섬세하고 민감하다. 발바닥을 간질이면 천하의 장수도 깔깔거리며 웃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민감하고 예민한 발을 함부로 방치하고 천대하기 때문에 몰골이 험하게 되는 것이다. 본래 가지고 있던 자존심과 수줍음을 잃어버리고 염치없는 중년 아저씨나 아줌마처럼 되어버린다.

발은 노동자와 같다. 노동자는 중요한 일을 많이 하지만, 사람들은 노동자에 대한 고마움을 잘 모르고 지낸다. 노동의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도 파업이 시작되어 자동차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노선이 끊어지면 그제야 노동자들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발이 아파서 걷기 힘들어질 때까지는 발의 고마움을 특별히 느끼지 못한다.

우리나라 대표적 민요인 <아리랑>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가사가 있다. 발에 병이 나면 모든 것이 좌절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발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하루종일 어두운 신발 속에 갇혀 온몸을 짊어지고 다니는 발을 볼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가냘픈 발목에 온몸의 무게를 싣고 멀고 험한 길을 힘들게 돌아다니는 발이 안타까워 보인다. 땀 냄새가 심하게 나서 천대받는 발을 보면, 저 발이 어릴 때 얼마나 귀엽고 예뻤던 발인데 저런 몰골이 되었나, 하는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발을 귀하게 대접해야겠다. 꼭 맞는 편안한 신발을 신고, 공기가 잘 통하게 발가락 양말을 사 신어야겠다. 무좀이나 티눈이 생기면 좋은 약을 발라주고 정성껏 치료해주어야겠다. 냄새가 나지 않도록 깨끗한 물로 씻어주고, 마른 수건으로 잘 닦아주어야겠다. 그리고 아침저녁 정성껏 주물러주어야겠다.

감정을 표현하는 기관이 얼굴이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기관은 발이다. 발은 변함 없는 충성심으로 나를 온 세계로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켰고, 또 내가 서 있는 이곳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러니 발의 공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어찌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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