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는 물리적이고 경직되고 단조롭다.
반면에 예술의 세계는 정신적이고 여유가 있으며 다양하다. 예술 정신은 변화와 다양성이 없으면 견디지 못한다. 예술의 세계에는 변화와 파격이 있다. 과학 법칙의 불변성을 깨뜨리는 예술적 수단이 파격이 아닌가 한다.
고려자기의 예술성은 파격의 아름다움에 있다. 파격의 아름다움이 없다면 공장에서 생산된 상업용 자기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편의성은 있지만 예술성은 떨어진다. 그러나 예술설의 극치를 이룬 고려자기는 완전한 원이 아니다. 고려자기는 파격으로 예술성을 나타내고 있다. 파격이 없는 예술은 과학에 구속된다. 생명 현상과 예술 혼은 파격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개의 원이 있다. 하나는 컴퍼스로 그린 원이고, 다른 하나는 손으로 그린 원이다. 전자는 과학적 원이고, 후자는 예술적 원이다.
과학적 원은 일정한 곡률과 반경을 가지고 있으며, 원주율의 법칙에 지배받기 때문에 원 위의 모든 점의 위치가 결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수식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손으로 그린 원은 엄밀한 의미에서 원이 아니다. 원 위에 있는 점들은 그 어느 것도 하나의 수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다른 위치에 존재한다.
과학은 물리적 법칙인 데 비해, 예술은 생명 현상의 외적 표현이다. 생명과 정신 현상은 순간순간 다른 원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일정한 법칙에 지배받는 물리적 현상과는 다르다.
과학은 차갑고 날카로우며 단조롭다. 예술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다양하다. 예술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고 체온이 이따.
과학적 진실은 조금도 넘치거나 부족해서는 안 된다. 완전한 법칙만이 허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다양하고 여유가 있다. 결코 완전한 일치가 없다. 조금 부족하기도 하고 넘치기도 한다.
나는 과학적 엄밀성보다는 예술적 여유를 더 좋아한다. 차가운 규칙보다는 따뜻한 불규칙이 더 좋고, 경직된 원칙보다는 변화가 있는 여유를 더 좋아한다. 공장에서 만든 구슬보다는 바닷가에서 발견하는 둥근 조약돌이 좋고, 기계로 짠 쫌쫌한 털옷보다는 어머니가 뜨개질한 느슨한 털옷이 더 좋다.
우리에게는 과학과 예술이 다 필요하지만, 나는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과학적 삶보다 다양하고 여유 있는 예술적 삶이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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