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체성 논란에 부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4-08-24 18: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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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 겸 국회의원 {ILINK:1} 한 여름 휴가철에 때아닌 국가정체성 논란으로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친일청산, 의문사위 논란, 국보법 개폐에 이어 서해북방한계선(NLL) 충돌과 관련한 고의 보고 누락에 이르기까지 논란의 소재도 다양합니다.
국가정체성은 중요합니다. 국민들에게 소속감과 일체감을 부여하고 나라의 근본과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국가 정체성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나라는 근본이 바로 선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진지한 논의는 나라의 위기를 수습하고 새로운 통합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정체성 논란은 나라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시키는 정쟁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을 한번 보겠습니다.
먼저 의문사위의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민주화 기여 인정 건은 국민 정서와 다소 동떨어진 것으로서 이미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도 그 문제점이 지적되어 기각된 사안입니다. 또한 간첩사건 연루 전력이 있는 사람이 의문사위 조사관으로 활동한 것 역시 국민정서로 볼 때는 약간 문제가 있지만 정상적인 채용절차를 거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즉 두 건 모두 절차상으로 볼 때 별 문제 없는 사안으로서 결코 일부 야당에서 주장하듯이 ‘간첩이 영웅이 되었거나’ 혹은 ‘간첩이 국군을 조사한’ 그런 황당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우리의 국가정체성이라고 인정한다면 이 건은 국가 정체성을 흔든 게 아니라 오히려 국가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국가 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전후 냉전시대 특수성의 산물로서 정권 안보 및 인권탄압의 도구로서 억울한 희생자들을 양산해 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아직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과 상당수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를 고려하여 즉각적인 폐지보다는 독소조항의 개정을 통한 점진적 폐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이러한 데도 국보법 개폐 주장에 대해 무조건 정체성이 의심스럽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국보법은 반공주의 정체성에서는 필수적인 법이지만 자유민주주의 정체성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법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NLL 관련 고의 보고누락 건을 보겠습니다. 이 건은 북한 경비정의 NLL 월선에 대한 우리 해군의 대응이 적정했느냐 하는 문제와 대통령에 대한 보고를 고의로 누락시켰느냐 하는 문제로 구분됩니다. 청와대는 두 번째 사안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우리 해군의 대응은 대체로 올바른 것이었지만, 대통령에 대한 군의 보고에는 문제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군이 어떤 이유에서건 대통령에게 허위 누락 보고를 했다면 이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문민통제 원칙을 훼손했을 뿐 아니라 상부에 대한 정확한 보고라는 군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마저도 저버린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군사기밀성 내용의 고의 유출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점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을 두고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정당하게 대응한 군만 못살게 군다.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하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공세를 위한 비방에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이처럼 요즘 염천을 달구고 있는 국가 정체성 논란이라는 게 한꺼풀만 벗겨보면 거의 아무런 실체가 없는 변형된 ‘색깔공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당은 일련의 사안들이 우리의 국가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도대체 어떤 내용이 우리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훼손한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이 위기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야당이 이러한 정치공세를 펴는 데에는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외부의 적 만들기를 통한 내부 단속이겠지요.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친일 진상규명 문제로부터 국민적 관심을 돌리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을 겁니다.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말 안 해도 대충 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국가정체성 논란을 벌이자는 사람들의 정체를 국민들은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문제는 여당에게도 있습니다. 좀 더 어른스럽게 대꾸하고 또 아예 그런 정치공세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국정을 잘 이끌어 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현장국회를 하기로 했으면 정쟁에는 신경을 끄고 민생에 전념을 해야 하겠지요. 한마디로 책임있는 여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실체도 모호한 소모적인 ‘국가정체성 논란’이 아니라, 여야 정치인들이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자각하고 벌이는 생산적인 ‘정책성 논란’입니다.

모쪼록 정치권은 상호 적대적인 정체성으로 더 멀어지기 전에 서로 만나 상생의 정신을 회복하고 국가와 민생을 위한 정치로 복귀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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