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님도 격려사를 하셨고 천주교, 기독교, 불교계의 성직자들이 이 법안의 제출에 대해 환영하는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 법은 지난 70년대 민청학련 사건 때 내란죄로 사형언도를 받았던 우리당의 유인태 의원님이 제출한 법안입니다. 사실 16대 때에도 과반수를 넘긴 의원들이 서명하여 제출되었지만 법안심사를 최종적으로 다루는 법사위원회에서 상정을 하지 않아서 자동적으로 폐기되었습니다.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요즘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죄질이 무겁지만 처벌하는 방법인 사형제도 또한 반인륜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 날 학생운동으로 두 번 복역 하면서 서울 구치소에서 적지않은 사형수들을 만났습니다. 사형수는 알다시피 기결수가 아닙니다. 미결수입니다. 사형수가 기결이라고 한다면 이미 사형이 집행된 거죠.
그런데 제가 만난 사형수들은 의외로 참으로 아름다운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밖에서 자기가 행한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속죄하려는 마음을 갖고 회개하고 매일같이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면회 때에는 혹시나 이 면회가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폐방되는 시간(오후 4~5시)이 되면 오늘도 무사히 지났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며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합니다.
한번은 어느 사형수를 교도관들이 잠깐 혼자 복도에 방치해 둔 적이었습니다. 그 사형수의 눈빛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혹시 나를 지금 사형장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는 저 사람이 순간순간을 죽음의 공포와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사형수들 중 일부는 절대 회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방에 있는 죄수자들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협박을 하는 사람, 사식을 달라고 윽박지르는 사람, 이미 사형인데 추가로 죄를 받아 봤자라며 자포자기하여 더 험해지는 사람 등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형수가 되면 ‘저 사람이 언제 사형수였나…’하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평온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죽음의 그림자는 무거운 것입니다.
사형이 집행될 때는 대부분 누가 면회 왔다는 거짓말을 하고 형장에 데리고 갑니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엄청난 반항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복역했던 구치소에서는 사형 집행이 있는 날이 되면 다른 재소자들의 세면과 면회도 금지하면서 오늘이 사형 당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도 했습니다.
87년 사형집행이 있던 어느 날, 지금은 독립공원이 되어 있는 서대문 구치소에서의 일입니다.
당시 서대문 구치소에는 9사와 10사만이 남아있는데 바로 9사의 동쪽 끝 쪽에 사형장이 있었습니다. 사형장 양쪽 끝에는 꽃밭이 있었는데 한 사형수가 그 길을 지나면서 일일이 꽃들에게 정성스럽게 인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형수에게는 마지막으로 보고 듣는 이승의 모든 경험들이 너무나 귀했던 거지요.
그러나 정작 사형을 집행하고 나오는 교도관들은 너무 태연했습니다. 밧줄을 내려 사형을 집행한 날에는 수고했다고 술이나 한 잔 하라는 뜻으로 특별수당까지 받는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그들에게는 사형집행이 난이도가 조금 높은 일일 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하게 하는 사형은 정말 없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사형수들이 죄 값으로 ‘죽임’이라는 중벌을 받지 않았다면 꽃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죽음을 직면한 그 사형수의 고통 이상의 고통을 그 사형수로부터 당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사형 제도를 폐지한 미국에서 흉악범죄가 늘고 있지 않다는 예를 들어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전면적인 사형제도의 폐지로 가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면적인 폐지보다는 사형을 받을 수 있는 죄와 해당 법률의 타당성을 잘 살펴서 사형이 무분별하게 선고되지 않도록 사형제도의 집행수를 줄여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억울하게 사형판결을 받고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하지만 외란이나 내란,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과 행복을 한꺼번에 앗아간 사람들이나 얼마 전 경악할 만한 범죄를 저질렀던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들도 존엄한 생명이라는 이유로 보호해 줘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런 범죄에 대해서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심에 기대는 사형제도가 우리사회를 위해 좀 더 안정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더 없이 소중한 만큼 의도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많은 생명을 해친 사람의 생명까지 법적으로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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