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가야 고분에서 발견된 여전사 기사를 읽는 순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후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악몽에 시달렸다.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베일에 싸인 금관가야의 실체를 밝혀줄 무덤이 발견됐다.
갑옷과 철제투구로 무장한 채 순장당한 인골 3구가 한 무덤에서 나란히 나왔다. 모두 20~30대 여성으로 드러났다. 더 정밀히 분석했더니 이들의 다리근육은 보통여성보다 훨씬 발달해 있었다.
김해 예안리 57호분에서 또 다른 여전사의 흔적이 나타났다. 기마병 말갖춤새는 물론 철촉 22점과 철창 등 주로 남자전사의 무덤 유물들이 대거 쏟아졌다. 함께 출토된 칼은 이 여전사가 지휘관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거미’는 가야의 여전사집단 우두머리 ‘유옥’의 별명이다. 가야왕과 함께 자란 유옥은 왕의 첫사랑이다. 하지만 신분 차이로 결혼상대자는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왕의 아기를 임신,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격분한 유옥의 남편은 전쟁터로 나갔다 백제의 포로가 된다. 이어 가야왕을 암살하는 자객이 가야로 잠입한다….
신라에 정복되면서 사라져 버린 고대왕국 가야는 관심사 밖이었다. 그러나 가야는 철 생산지였고 여자무사가 발굴될 만큼 고유한 문화를 지닌 왕국이었다. 잃어버린 위대한 여성성의 본고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당대 여성들은 왜 전사로 나섰는가. 4세기 동아시아는 격변기였다. 북방경영에 주력하던 고구려가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서 백제와 치열하게 접전했다.
남부 패권을 놓고는 금관가야가 신라와 전쟁을 벌였다. 신라는 고구려와 제휴, 금관가야를 압박했다. 금관가야는 백제와 연대해 맞섰다. 금관가야가 무기체계를 정비하고 기마전술을 도입하고 여전사라는 전문전사 집단을 양성한 이유다.
‘거미’는 가야가 일본 고대문명의 원조이며 일본의 여신은 가야의 공주였다고 주장한다. 전장에서는 전사 ‘거미’, 평소에는 왕의 연인이었던 ‘유옥’. 왕이 죽자 스스로 왕의 무덤에 순장됨으로써 그녀의 사랑은 완성된다.
304쪽, 9700원, 빨간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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