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하고 초라한 삶들을 조용하게 연민하며 공감의 시선을 보낸다. 경쾌한 문체는 한결같이 빛을 발하고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포함한 가족관계에서 삶과 정체를 탐구하던 이전의 작품들과 다르다. 고독하고 분열적인 인물을 다루면서 소소한 일상의 국면에서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인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서른다섯번째 생일,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만나던 이탈리아 식당에 걸려 있던 보티첼리 작 ‘비너스의 탄생’을 잊을 수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는 뚱뚱한 모습만 보였고 이제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않은 아버지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매일 먹는 밥을 거부하는 다이어트란 결국 인간의 문명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은 끝내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야 달라진 모습으로 빈소를 찾는다.
아버지는 ‘비너스의 탄생’을 유품으로 남긴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현실에서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부정이 음식 거부와 연결된다.
은씨는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시집을 뒤지곤 한다. K도 도와준다. 그가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문장을 하나 골라냈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그 문장으로부터 표제작의 제목이 생겨났다. 내가 발견한 문장은 ‘하지만 지금껏 그가 삶을 시작한 적이 있던가’와 ‘사랑했노라, 자신의 내면, 자기 내면의 황야를’이었다. 고마워할 수 밖에 없겠다”고 전했다.
이 소설집의 특징은 현실과 환상의 긴장과 착종이다. 서사를 따라 충실하게 읽다보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현실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예술은 사람들이 사고하는 일정한 패턴을 배반함으로써 긴장을 만들어’(‘의심을 찬양함’)내듯이, 하나의 허구(소설) 안에 허구적인 설정이 겹겹으로 등장한다. 바깥의 허구(소설 속의 현실)보다 더 허구적이고 황당한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소설 속 삶과 현실은 오롯하게 다른 차원의 삶으로 열리며 진정성을 얻는다.
‘고독의 발견’에서 거짓말도 못하고 별 볼 일도 없는 만년고시생인 주인공 K는 생일에 찻집에서 몽환적인 노래를 들으면 잠에 빠졌고, 그 뒤로 펼쳐지는 일들은 꿈속처럼 묘한 분위기다. 한 사내가 나타나 W시의 여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W시에서 난쟁이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자신을 여러개로 쪼갤 수 있다며 나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모두 꿈 속 상황이고 인물이다. 다시 꿈에서 깬 K는 제 삶을 관통하는 거대한 고독을 발견하고 소리없이 오열한다.
‘날씨와 생활’에서는 몽상소녀 B가 출생의 비밀이나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자신을 끊임없이 상상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다르고 오히려 냉혹하기만 하다. 잔뜩 긴장한 B는 할부 책값을 받으러 온 수금원과 어머니의 담담한 모습에 주체할 수 없이 큰 웃음을 터뜨린다.
상상 혹은 환상과 현실의 팽팽한 긴장이 풀리며 쏟아져나온 허탈한 웃음은 은희경 문학의 페이소스다. 끝까지 비극인 인생도, 마냥 희극인 인생도 없다는 이치를 깨달은 소녀가 누구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날씨와 생활’은 오디오북으로도 제작돼 책을 사면 덤으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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