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없어도 무섭다?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7-08 20: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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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공포영화 색다른 공식에 주목 ‘링’ 이후 쏟아졌던 귀신 이야기서 벗어나
‘싸이코패스’서 ‘일제시대 병원 기담’까지
차별화된 각양각색 호러코드 관객들 손짓

98년 ‘여고괴담‘ 이후 매년 여름에는 공포영화가 내걸렸다. ‘장화 홍련’ ‘알포인트’ 같은 걸작도 등장했지만 때로는 범작, 더러는 졸작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다른 영화들보다 기획성이 강할 뿐더러 빨리 찍어서 빨리 결판을 내자는 생각들이 어우러져서 빚어진 현상이다.

올 여름, 극장가에는 5월부터 공포영화가 시작됐다. 덩치 큰 한국 영화들이 할리우드 영화와 맞대결을 피하는 바람에 졸지에 한국 공포영화는 외화 공습에 맞서는 꼴이 됐다. 그래도 여름철 장사는 피할 수 없는 법.

올 공포 영화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새로움에 도전했다.

‘링’의 사다코가 등장하기 이전, 하얀 소복을 입고 긴 생머리를 앞으로 늘어뜨린 처녀귀신은 우리나라의 전통 귀신 중 하나였다. ‘월하의 공동묘지’를 굳이 떠올릴 필요 없이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통해 처녀귀신은 구미호와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링’이 등장한 이래 국내 공포영화에서는 사다코 같은 귀신은 모두 왜색 시비를 겪었다. 여기에는 점프 컷을 통해 ‘턱’ ‘턱’ 순간 이동하고, 기괴한 관절 꺾기 소음으로 공포감을 증폭하려 했던 감독들의 안일함도 한 몫 했다.

이에 대한 시비가 많아서 인지 올 여름 공포 영화에는 귀신이 사라졌다.

지난해 제작이 완료돼 올 해 맨 처음 개봉한 공포영화인 ‘전설의 고향’을 제외하고는 소복 입은 귀신은 그다지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귀신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이 등장했다.

황정민 주연의 ‘검은집’은 감정이 없는 사람인 ‘싸이코 패스’를 상대로 한 공포물이기에 처음부터 귀신이라는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한지민 온주완 주연의 ‘해부학교실’도 마찬가지.

시체 해부를 앞둔 의대생들의 이야기인 ‘해부학교실’은 ‘여고괴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고괴담‘이 닫힌 공간에 있는 여고생들 사이에서 싹트는 불만과 갈등이 이야기 전개의 중심이라면 ‘해부학교실’은 의대생이라는 엘리트 집단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비극의 씨앗을 낳는다.

강경옥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두 사람이다’는 이무기를 죽인 탓에 대대로 주위 사람 중 두 명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업에 걸린 소녀(윤진서)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무기의 저주라는 소재 외에는 두려운 것은 사람 뿐이다. 그것도 가족 같은 낯익은 존재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공포를 내세운다.

일제 치하인 40년대를 배경으로 한 ‘기담‘은 병원이라는 공포영화에서 낯익은 소재에 암울했던 시대를 더해 그 속에서 벌어지는 떨림을 전한다.

‘기담’은 동경 유학 중이던 엘리트 의사 부부 인영(김보경)과 동원(김태우)이 갑작스레 귀국해 부임한 경성 최고 서양식 병원인 ‘안생병원(安生病院)’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죽음이 뒤엉킨 경성공포극.

경성을 흉흉한 소문으로 물들인 연쇄 살인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저마다 비밀스런 사랑을 품고 한 곳에 모이게 된 사람들에게 펼쳐지는 섬뜩한 사건들을 다뤘다.

베트남에서 촬영된 ‘므이’는 올 여름 공포영화 중 거의 유일하게 귀신이 등장한다. 하지만 베트남 귀신이라는 점에서 차별을 이룬다. 또한 ‘므이’ 역시 귀신이 주는 공포보다는 그런 공포를 낳게 한 사람들의 욕망에 더욱 중점을 뒀다.

우리나라 공포 영화에는 대개 원한을 풀어주는 ‘해원’의 모티브가 담겨 있다. 한이 많아서 그런지 그 한을 풀어주면 어느덧 귀신은 사라진다. 무차별로 살인을 일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서구 공포 영화와는 다른 점이다.
올 여름 공포 영화들이 예년보다 차별을 이룬다면 ‘해원’이라는 모티브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에 절어있는 귀신들도 사라졌다.

스멀스멀 목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공포가 귀신에서 사람으로 바뀌는 것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으로 바뀌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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