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 ‘망고식스’에서 만난 탤런트 염정아(39)는 망고주스처럼 밝고 상큼했다.
최근 막을 내린 MBC TV 수목드라마 ‘로열 패밀리’에서 굴지의 재벌가 JK그룹의 둘째 며느리 ‘김인숙’을 맡으면서 드러낸 어둡고 침울하거나 독기어린 표정은 간 곳 없다. 또 2월24일 서울 서초동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와 3월15일 인천 송도 녹화현장에서의 힘들고 지친 모습도 아니다. 과거에 느꼈던 즐겁고 쾌활한 염정아로 돌아와 있었다.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다. 2006년 12월30일 정형외과 전문의 허일(41)씨와 결혼한 염정아는 2008년과 2009년 딸과 아들을 낳았다.
“저 밝아졌죠? 어제 애들과 롯데월드에 갔다 왔어요. 요즘 애들과 열심히 놀아주고 있어요. 작품하는 동안 애들에게 미안했고, 너무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는 되도록 생각을 안 하려고 했죠. 가족 생각만 하게 되면 연기를 잘 못하게 되니까요.”
3년만에 안방극장으로 컴백한 염정아는 이 드라마에서 비천한 출신 성분 탓에 20년 동안 시어머니 ‘공순호 회장’(김영애)을 비록한 가족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지만 남몰래 칼을 갈아 마침내 그룹 회장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인숙을 처절하고 강렬하게 표현,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염정아는 겸손을 넘어 몹시 부담스러워 했다. “칭찬해주는 것이 고맙긴 하지만 제가 잘했다는 것은 모르겠네요. 미친 연기력이었다고도 하는데 그건 제가 아니라 김영애 선생님이시구요.”
그러면서도 한 가지는 분명히 했다. 엄마 연기에 진실된 모성애를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애 둘을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감정의 폭이 다양해지긴 했을 거에요. 다들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애기 낳은 뒤 달라진다고. 아가씨였을 때도 엄마 역할을 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가짜였던 것 같아요.”
인숙에게 품은 불만 역시 모성애 때문이었다.
“인숙의 상황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엄마였어요. 아들이 나를 위해 죽어가는데 그걸 모른 척하고 취임식장에 가다니요? 다만 17회에서 지훈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우리 아들 내 아들. 조니야 그러면 안돼…’라고 절규하는 것은 진짜 엄마의 모성으로 했죠.”
염정아에게는 요즘 엄청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5월 말 방송될 KBS 2TV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여배우 특집’ 출연 외에는 가정에 올인할 생각이다. “저는 지금 일과 가정의 경계선에 서있죠. 하지만 결국 가야할 곳은 가정일 것 같네요. 옛날에는 일이 중요했지만 그것에 치중하려고 했으면 결혼해선 안 됐겠죠. 사실 일도 너무 하고 싶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애들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을 모른 척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염정아는 이 작품을 하며 가족, 특히 자녀들을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 그리고 고마움이 더욱 커진 듯했다. “염정아의 재발견, 연기변신…, 그런 얘기를 듣게 돼서 고민이에요. 그런데 애들은 어떻게 해요? 한 번 일을 하려면 아이들의 안전을 확실히 세팅해놓지 않고는 할 수 없으니.”
‘행운남’답게 남편도 쿨했다. 이 드라마에서 염정아는 남자주인공 ‘지훈’역의 지성(34)과 러브라인을 이뤘다. 키스신도 있었다. 기혼으로서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미안했죠. 남편이 첫회부터 봤는데 그날 만큼은 못 보게 해야 할 것 같아서 밖에 있게 했어요. 그날 방송은 다행히 못 보고 넘어갔구나 했는데 다음날 밤에 남편에게 ‘오빠 사실은 그런 신이 있었는데…’라고 고백했죠. 그랬더니 남편이 ‘뭐 별거 아니던데’하더군요. 인터넷 기사로 다 봤더군요. 얼마나 고맙든지요.”
아내와 엄마에 주력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상 그녀의 신들린 듯한 연기를 자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제가 마흔인데 예전 같으면 마흔에 여주인공을 한다는 것이 가능했겠어요? 그런데 이번에 저도 했잖아요. 제가 50, 60대 되면 외국 영화에서처럼 할머니도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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