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상우·정려원, 가을을 울린다

관리자 / / 기사승인 : 2011-08-30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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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 감독의 영화 ‘통증’ 내달 7일 개봉

세상에 치이고 외로워져 잠시나마 안식과 평온을 찾고 싶을 때, 가슴시린 멜로 영화 한 편은 훌륭한 약이다. 그런 의미에서 곽경택(45) 감독이 가을을 앞두고 들고온 영화 '통증'은 명약이요, 특효약일 것이다.

제목처럼 사랑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은 이 영화가 29일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시사회를 열고 '눈물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실수로 인해 빚어진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남순'(권상우)은 당시의 정신적 충격으로 아픔이나 자극은 물론 슬픔까지도 느끼지 못하는 '무통증'에 걸리고 만다.

선배 '범로'(마동석)와 무통증을 이용해 자해 공갈로 살아가던 그는 그날도 사채를 받으러 갔다가 한 여인과 만난다. 역시 가족을 모두 잃고 번화가에서 패션 액세서리 노점을 하며 열심히, 그러나 힘들게 살아가는 '동현'(정려원)이다.

그런데 동현은 작은 상처에도 피가 잘 멎지 않아 자칫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혈우병 환자다.

채무자와 불법 추심업자로 만나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어느덧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소중히 여기게 된다. 동현은 남순이 울고 싶을 때 대신 울어주려 하고, 남순은 동현이 아플 때 대신 아파주겠노라 다짐한다.

무통증 환자와 혈우병 환자라는 극과 극, 절대 격차 커플의 탄생이다. '정반합'이라는 헤겔(1770~1831)의 변증법이 마치 이 두 사람을 위해 준비된 이론이었던 것처럼 세상에 혼자였고 늘 고독했던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사랑하며 살게 된다. 하지만 신의 시샘이었을까, 모처럼 행복을 알아가기 시작한 그들 앞에 잔인한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800만 관객 기록의 '친구'(2001)를 비롯해 '챔피언'(2002), '태풍'(2005), '사랑'(2007) 등 선 굵은 남성 영화를 주로 연출해온 곽 감독이기에 그가 요리하는 본격 멜로는 무슨 맛일까 궁금했고, 기대됐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지켜보면서 역시 훌륭한 요리사는 무슨 식재료, 어떤 조리기구가 주어져도 많은 사람들의 혀 끝에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본격 멜로를 표방했어도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무리 매를 맞아도 눈빛 하나 변하지 않는 남순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이내 남순과 범로의 맛깔나는 콤비 공갈극 덕에 곧 심적 균형을 되찾게 된다. 오히려 얼굴 곳곳의 상처에 연고를 스킨로션처럼 펴서 바르는 남순의 행동, 지하철 물품 보관함 곳곳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동현의 이삿짐, 동현이 남순에게 "혀 짧은 소리를 낸다"고 쏘아붙이고, 남순이 동현에게 "말라깽이"라고 놀리는 대사는 두 사람의 실제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하며 포복절도케 한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본업에 충실하게 관객들을 처절한 슬픔 앞으로 몰아간다. 어찌보면 무통증 환자와 혈우병 환자의 만남이라는 설정이 절반,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가 나머지의 절반, 두 사람에게 엄습하는 불길한 미래가 절반인 지극히 단순한 구조다. 하지만 그런 점이 집중하며 빠져들며 즐길 수 있게 해 만족스럽다.

곽 감독은 "작가의 시나리오를 재해석해 만든 내 유일한 작품"이라며 "강풀 작가의 원안과 한수련 작가의 시나리오를 재해석한 작업이 어떤 조화를 이룰지 기대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끝까지 시나리오를 놓지 않고 열과 성을 다했다"고 밝혔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흡족하다.

곽 감독으로부터 "이 사람 아니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캐스팅했다"는 격찬을 받은 권상우(35)는 "'통증'을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대신할 내 대표작으로 만들겠다"는 각오처럼 신들린듯한 열연을 펼친다. 다소 과장돼 보였던 전작들과 달리 맞춤복을 입은 듯 자연스럽다.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 탓에 처음에는 캐스팅을 주저했던 곽 감독이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라면서 되레 푹 빠져들게 만든 정려원(30)은 억척스러우면서도 맑고 순수한 심성을 지닌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권상우는 "실제 촬영할 때는 영화에 나온 것보다 맞는 장면이 훨씬 많았다. 대역 없이 실제로 맞았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맞는 장면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남순의 캐릭터를 쌓는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즐겁게 임했다"고 털어놓으며 "계속 관객들과 좋은 영화로 만나기 위해 변신을 하고 싶었는데 '통증'이란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정려원은 "눈물 연기를 할 때 오래 떨어져 지내고 있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몰입했다"면서 "영화를 찍는 내내 행복한 작업이었고, 관객들도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울지 않겠다고 마음 단단히 먹은 사람이라면 '통증'을 보면서도 결코 울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떨 때는 가슴 속 모든 한을 죄다 들어내듯 제대로 울어버리는 것이 배꼽 빠져라 웃는 것보다 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

다만 남순이 자해하는 장면들은 잔인하다기보다 가슴이 아프니 심장보다 심성이 약한 사람, 임신부·노약자, 그리고 권상우의 열혈팬이라면 보기 전에 마음을 굳게 다질 필요가 있다.

제작 ㈜영화사 축제·㈜트로피 엔터테인먼트,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15세 이상 관람가. 9월7일 개봉.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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