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 둔화를 이유로 국내 대기업들이 투자를 연기하거나 대폭 축소하고 있다. 4분기 경영상태가 최악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으며 위기를 넘기 위한 숨고르기에 돌입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이 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 둔화 등을 이유로 예정된 투자를 미루거나 사업을 연기하는 등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83개 상장 대기업들 중 80% 가량이 3분기 들어 현금흐름이 급격히 나빠지며 실적이 하향 곡선을 그린 상황이어서 4분기 전망까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포스코의 경우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올해 예정된 투자비도 7조3000억원에서 6조원으로 1조3000억원 줄이기로 했다. 3분기 실적은 선방한 수준이지만 4분기 이후 경영환경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간 매출액 전망치도 39조9000억원에서 39조3000억원으로 6000억원 내려잡았다. 대신 연간 원가절감 목표치는 1조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끌어올렸다. 매출이 줄어드는 만큼 원가를 절감해 이를 메우겠다는 것이다.
최종태 포스코 사장은 21일 열린 3분기 기업설명회에서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경제 불황으로 (글로벌 경영)환경이 나쁘고 자동차나 조선 등 수요산업의 향후 전망도 밝지 않아 (투자비를)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4분기가 가장 나쁠 것으로 보이는데,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지 못할 것 같다”며 “내년 투자규모 역시 올해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역시 불황 여파에 예정된 투자를 연기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미국 에너지 전문업체인 마티네에너지사와 애리조나주에 175㎿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지으려 했으나 계획이 백지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 태양광 모듈공장과 국내 음성공장 증설 계획도 무기한 연기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정부 보조금은 줄어든데 반해 공급은 과잉되고 관련 설비 가격은 계속 떨어져 이전에 수립한 계획을 그대로 실행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역시 글로벌 경기 불황 여파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공급이 수요를 앞서는 과잉 현상을 우려해 내년 판매 증가율을 6~8%대로 예상하고 있다. 2009년(11%) 이후 4년 만에 판매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내려앉는 셈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내년 자동차 판매 목표를 한 자릿수 증가율로 예상하고 있다”며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자동차 수요 회복세가 더뎌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워온 STX는 최근 글로벌 경기 불황과 내실경영 강화를 위해 향후 대형 M&A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내년 1분기(1~3월)까지 해외자산매각과 자본유치 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과 안정에 나서기로 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최근 열린 그룹 경영회의에서 “하이닉스 포기와 더불어 향후 대형 M&A는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 그룹 주력사업 안정 및 내실경영에 더욱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STX는 현재 금융권과 공동으로 자본유치, 해외 투자자산 매각, 회사채 발행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조달 계획을 진행 중이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최근 중국 LCD 공장 건설 계획을 재검토하고 내년도 신규 LCD 라인 투자를 철회했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부사장(CFO)은 20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중국 공장 착공 시기를 원점에서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내년 신규 LCD 라인 투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중국 LCD 업체들이 8세대 라인 생산에 들어가면서 공급 과잉을 겪고 있고, 극심한 경기 침체로 북미,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서 TV수요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투자 목표인 23조원은 계획대로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사업부문별 투자 비중을 재조키로 했다. 반도체는 높이고 실적이 저조한 액정표시장치(LCD)는 낮추기로 한 것이다.
LG전자의 경우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당한 이후 올해 계획한 투자는 예정대로 집행하는 대신 각종 경비를 줄이기로 했다.
한진해운의 경우 임원 급여를 줄이고 있다. 임원 51명에 대해 이달부터 급여 10%를 회사에 반납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5년 만에 희망퇴직을 실시 중이다.
유통업계도 불황 타계를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이달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홈쇼핑 등은 판촉비와 광고비, 접대비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신세계도 이달 들어 비용절감을 위한 ‘슬림 워크’ 체제에 돌입하고 판매관리비를 20∼30% 삭감했다. 접대성 경비도 최소화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CJ그룹 역시 내년 투자액을 소폭 줄일 예정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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