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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무용론으로 전국이 들썩 거린다.
심지어 국회와 국정감사를 비아냥거리는 신조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19대 국회가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면서 전국이 '국회 무용론'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었다. 그때 국민은 ‘방탄 국회’라는 용어로 국회의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본격적인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좀 나아질 것이란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런 기대는 이제 물 건너 간 것 같다.
2014년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구태국감’의 모습을 되풀이 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부실국감’, ‘막말국감’, ‘호통국감’, ‘정쟁국감’, ‘민원국감’, ‘외유국감’ 등등의 용어로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 실태를 조롱하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사실 이번 국감은 '수박겉핥기'식의 부실국감이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진즉 나온 터였다.
왜냐하면 국정감사 기관은 대폭 확대된 데 비해 국감일정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올해 국정감사 대상기관을 672곳으로 확정했다. 지난해 630개 기관보다 42곳 늘어나 1988년 국감 부활 이래 사상 최대 규모다.
그런데도 국감기간은 20일에 불과하다. 그나마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15일이 채 안된다. 게다가 여야가 국감 일정에 합의한 것은 지난달 30일로 준비기간이 6일에 불과했다. 그나마 준비기간 중 개천절과 주말(3~5일)이 연달아 껴있어 사실상 준비 기간은 4일인 셈이다.
그 시간에 충분한 자료나 질의서를 받기 어려웠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정쟁으로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국감첫날, 환경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감에서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 결국 파행했다. 그 다음날 노동부에 대한 국감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여야가 기업인 증인 채택 문제로 마찰을 빚다가 결국 정회를 선언하고 말았다.
환노위 야당 의원들이 여당과 증인 채택 협상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오후부터 가까스로 국감을 정상화했지만 일정이 더욱 촉박해졌다.
국방위에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야당 일부 의원들의 성향을 평가한 메모를 나눈 것이 공개되면서 한때 파행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전날 열린 국방위 국감에서 새정치연합 진성준 의원 발언 시간 중 정미경·송영근 의원이 주고받은 '쟤는 뭐든지 빼딱' '김광진·장하나 의원은 정체성이 좌파적' 등의 메모가 화근이었다.
새정치연합이 "동료 의원으로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며 즉각 사과를 요구한 반면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사적인 대화'라며 사과를 거부해 40여분간 대립하다 국감이 정회됐다. 결국 송 의원은 속개 후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이미 상당한 시간을 허비한 뒤였다.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그는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국감에서 이재영 LH 사장을 향해 "지역구 의원이 사장에게 해당 지역에 아파트를 검토해 보라고 하면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사장이 바쁘면 밑에 있는 직원이 보고서라도 제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통 쳐 빈축을 샀다. 가뜩이나 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마당에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려는 그의 모습이 역겹다.
또 국회 정무위원회는 중국과 일본으로 해외 국감 일정을 잡으면서 ‘외유국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실제 정무위는 오는 17일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로 나눠 2개반으로 편성해 1박 2일 일정으로 현지를 방문해 현장 국감을 진행한다.
일본은 도쿄지점 부당 대출사건을 계기로 국내은행의 해외 지점의 영업 행위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이고, 중국 베이징은 금융감독원 베이징사무소와 한국산업은행, 대우증권, 서울보증보험 베이징사무소를 상대로 현지에서 국정감사를 진행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도쿄반 김종훈 박대동 신동우 유일호 (이상 새누리), 김기준 김영환 박병석 신학용 이상직(이상 새정치) 의원이고, 베이징반은 정우택 김상민 김을동 김정훈 김태환 유의동 이운룡(이상 새누리), 강기정 김기식 민병두 이종걸 이학영 한명숙(이상 새정치), 이상규(통진당) 의원이 배정됐다. 정무위 소속 24명이 총출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해외직원이 2~3명뿐인 금융감독원 일본과 중국 사무소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기 위해 정무위 소속 의원 24명 전원이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국감일정도 촉박한 상황에서 다른 주요기관들의 국감보다 그게 더 중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 ‘국감무용론’이 ‘국회해산론’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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