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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여야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미소로 개헌론을 무력화 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날 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 직후 여야 지도부와 공식회동을 갖고 '예산안 시한 내 처리'를 합의했다.
그런데 바로 이 자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개헌이 '경제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라면서도 "경제에도 골든타임이 있지만 개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개헌론을 언급했다고 한다.
또 문 위원장은 대통령 집권 3년 차를 넘기면 개헌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논의는 일단 시작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박 대통령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문 위원장이 대화 도중 "내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개헌 이야기를 많이 하겠다"고 할 때에도 박 대통령은 "그러시냐"며 가볍게 미소로 받아넘겼다고 전해진다.
야당의 수뇌부가 야심차게 꺼내든 ‘개헌’ 발언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미소’로 잠재운 것이다.
앞서 MBC가 전날 “논란이 되고 있는 개헌 얘기도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하는 등 각 언론은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동 때 개헌문제가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로 다뤄질 것이란 관측을 내보냈었다.
그러나 문 위원장의 개헌발언은 주요 의제는커녕 한낱 농담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미소’가 그 어떤 ‘웅변’보다도 위력적인 힘을 보여준 셈이다.
이로써 이제 정치권에서 개헌론은 사실상 소멸상태나 다름없게 됐다.
사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개헌 논의가 정치권을 휩쓸고 있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개헌 논의 여부를 둘러싸고 정면충돌하는가 하면 여당과 야당의 주요 대권 후보들도 앞다투어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야 국회의원 70여명은 지난 2월 1987년 체제의 산물인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시대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을 발족하기도 했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 야당 간사)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해 국회가 대권 고지를 향한 베이스캠프가 되고, 여야의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도 “막강한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의 정치체제로 인해 증오와 적대의 정치가 만연하고 민생이 소홀해졌다”며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 고문)은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지금까지 진행된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이다.
헌법 개정은 헌법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그로인해 국민 다수가 원할 때 하는 것이 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은 정부 형태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 민생과 경제가 주요관심사다. 따라서 이번 개헌 논의가 사실상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인들의 게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제 지금까지의 개헌 논의는 정치권에서 자기들끼리 어떻게 권력을 나누느냐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 국민들에게 어떻게 더 많은 권력을 돌려줄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박 대통령은 그런 정치인들의 속내를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도 간단하게 엷은 미소로 ‘개헌’발언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정치권, 특히 여당 내부에서는 더 이상 개헌발언이 튀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개헌발언을 철회한 만큼, 이재오 의원도 같은 당 소속이라면 마땅히 자제해야 할 것이다.
새정치연합 등 야당 역시 국민의 민생살피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개헌 문제를 꺼내 또 다시 정국을 시끄럽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게 민심이고, 박 대통령의 미소가 지닌 힘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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