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과 때 아닌 유령 논란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5-01-05 15:10:40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편집국장 고하승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이 때 아닌 유령 논란을 불러왔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비선(秘線) 실세 의혹에 대해 “유령과 싸우는 것 같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지라시(사설정보지)’ 수준의 문건만 갖고 청와대와 정권을 흔들어 대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유령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새누리당도 검찰이 5일 정윤회 문건유출 파동을 계기로 불거진 청와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관련 논란들을 모두 '허위'라고 결론 낸 것과 관련, "실체 없는 유령에 휘둘려 국정 혼란이 야기된 데 대해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지울 수 없다"고 평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브리핑을 갖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일각에선 용두사미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뱀머리가 용머리로 부풀려진 것"이라며 "처음부터 황당한 의혹으로 점철된 '유령 찾기 게임'이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야당은 근거 없는 풍설을 사실인 것처럼 부풀렸고 국정 혼란을 부추겼다. 특검 주장을 하기 전에 반성부터 하는 게 도리일 것"이라며 "유령 찾기 게임이나 다름없는 특검론 공세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전날에도 “유령의 부존재를 입증하지 못하면 유령은 존재한다는 식의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자 혹세무민하고 백성을 속이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개입 의혹과 문건 제보자와의 친분 등으로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구설수에 올라 있지만 확인된 바는 하나도 없다.

정윤회씨나 박지만 EG회장의 경우 권력암투설이 무성하지만, 딱 떨어지게 ‘이것이 그 증거’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다보니 ‘유령’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주 과학이 발달한 미국에서도 유령의 존재를 믿는다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48%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그러면 이 유령 같은 존재인 ‘비선실세’ 의혹은 정녕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청와대 내에서 ‘비선 실세’라는 유령이 발붙일 조건을 없애면 된다.

어둡고 불투명한 상황이 유령의 존재를 드러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제거하면, 즉 청와대 내부 조직을 밝고, 투명하게 만들면 비선실세 의혹이라는 유령의 존재도 사라질 것이란 뜻이다.

사실 ‘정윤회 문건’을 단순 의혹으로 치부하기엔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거기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잘못이 크다.

김 실장이 올해 초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관련 문건을 보고 받았을 당시 좀 더 신중하게 대응했다면 이처럼 사안이 일파만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하는 3인방과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게다가 문건이 외부에 노출되면 큰 파장이 일 것을 우려해 그냥 묵인하고 넘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기춘 실장이 해당 문건에 담긴 의혹을 의도적으로 묵살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잘못된 대응이 결과적으로 정윤회 문건 파문을 확산시킨 셈이다.

사실 문건에 담긴 내용이 박근혜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돼 있다면 아무리 그것이 지라시 수준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할 책임이 김 실장에게 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음습한 유령, 즉 ‘비선실세’ 의혹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책임을 지지 않으면 검찰수사 이후에도 비선실세 의혹은 유령처럼 정치권을 맴돌게 될 것이다.

또 ‘문고리 3인방’으로 지목되는 당사자들 역시,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서는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물론 억울할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내가 물러나야 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들에 대해 '무한 신뢰감'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박 대통령은 1998년 국회의원으로 첫 당선됐을 때의 보좌진을 단 한번도 교체하지 않았고 청와대 비서관으로까지 발탁했다. 통상적인 '의원-보좌진 관계'를 넘어 가족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3인방이 진정 대통령을 충심으로 아낀다면,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눌러앉게 되면 인적 쇄신이 불가능하고, 국정의 동력이 붙지 않음은 물론 비선실세 의혹이라는 유령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하승 고하승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