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소문 ‘찌라시’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5-01-15 15: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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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최근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는 찌라시의 한줄 내용 때문에 잘 나가던 여배우가 목숨을 잃고, 그 매니저가 직접 찌라시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 나선다는 줄거리의 영화가 개봉된 일이 있다.

관객들로부터 그다지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를 둘러싼 숨 막히는 추격이 제법 볼만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영화 속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지금 정치권을 강타하는 사건들 모두 알고 보니 ‘찌라시’가 원흉이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이라는 것도 그렇다. 정치권은 실체 없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야당이 ‘유출된 문건’의 의혹을 사실로 단정 짓고,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연일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수사 결과는 어떤가.

비선실세 의혹이 담긴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이런저런 정황들을 모아 각색한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게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이른바 ‘십상시 비밀회동설’도 엉터리였고, ‘박지만 EG회장 미행설’ 역시 날조된 것이었다.

박 경정은 검찰에서 박동열 전 국세청장이 김춘식 행정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보고서를 썼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김춘식 행정관은 “박 전 청장에게 관련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완강하게 부인했고, 박동열 전 청장도 김춘식 행정관한테 들은 얘기가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여기저기에서 주어들은 얘기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결과적으로 박 경정이 보고서 내용의 최초 발설자로 김춘식 행정관을 지목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일이 또 발생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건파동 배후는 K,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적힌 수첩을 보는 모습이 한 카메라 기자에게 포착됐고, 그로인해 정국이 어수선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른바 ‘김무성 수첩 메모’라는 사건의 최초 유포자는 이준석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이었다. 그는 발설자로 음종환 전 청와대 행정관을 지목했다.

지난해 12월18일 청와대 인근에서 음 전 행정관과 이동빈 청와대 제2부속실 비서관, 신용한 청년위원회 위원장, 손수조 부산 사상구 당협위원장, 이준석 전 위원장 등이 술자리 모임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음 전 행정관이 이 전 위원장에게 “문건파동 배후는 김무성, 유승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음 전 행정관은 사실을 왜곡했다며 펄쩍 뛴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손수조 위원장도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

물론 이 진실게임은 좀 더 시간이 흘러야 진위를 알 수 있겠지만, 앞 뒤 정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저 ‘위험한 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 보인다.

즉 이 전 위원장이 손 위원장의 말처럼 말을 잘 못 알아들었거나, 팩트를 과장하거나 왜곡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그 파장은 지금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에게 전한 ‘소문’을 ‘사실’ 혹은 ‘진실’로 단정한 공세도 만만치 않다.

실제 김성태 의원은 15일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에서 "청와대 참모라는 사람이 집권당 대표를 우습게 본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발끈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 내부 문제로 인해 야기된 예민하고 엄중한 시기에 청와대 행정관이 근신하기는커녕 여당의 대표와 중진 의원을 논란의 배후로 지목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전날에는 이재오 의원이 수첩 논란의 진앙지로 청와대를 지목하면서 “비서관 3인만 아니라 행정관까지 나서서 온 데 헛소리하고 다니면 되겠나?"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찌라시’라는 게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 ‘비서관3인’을 언급하는 건 문제가 있다. 또 아직 음 전 행정관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확증이 없음에도 그를 사실로 단정해 공세를 취하는 것 역시 문제다.

위험한 소문인 ‘찌라시’가 지금은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지만, 언제 당신 쪽으로 방향을 돌릴지 알 수 없다. 그 때 “사실이 아니다”라거나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데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하며 의심을 한다면, 당신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한번쯤 역지사지(易地思之)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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