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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망신주기 위해 이른바 ‘논두렁 시계’ 음해공작을 벌였다는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의 주장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실제 2009년 5월 13일 SBS는 <8뉴스>에서 “시계, 논두렁에 버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자기 몰래 시계를 받아 보관하다가 지난해, 박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시계 두개를 모두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다음날에는 KBS가 “인터넷에선 봉하마을로 명품 시계를 찾으러 가자는 웃지못할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가세했다.
그런데 이것이 국정원의 개입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지난 25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이는 공작 수준에 가까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새정지민주연합은 당에서 소집을 요청한 국회 정보위와 법사위에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발언 배경과 경위를 파악하고 청문회 개최도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야당은 이 전 중수부장과 국정원 관계자는 물론이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청문회장에 불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 전 중수부장의 폭로에 대해 진위여부를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만일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전직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국민이 선출했던 최고지도자다. 그런 국민의 대표가 국가기관에 의해 의도적인 음해를 당했다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로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문책이 따라야 한다.
여기에 진보니 보수니 하는 진영의 논리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국회차원의 국정조사도 실시해야 한다. 다만 그 전에 이 전 중수부장이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증거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냥 막연히 어떤 느낌정도만 가지고 이런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면 그것은 경솔한 태도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특히 자신에 대한 면피용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면, 그 책임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다만 이 전 중수부장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할만한 충분한 증거들을 제시할 경우 새누리당은 이를 방어하기보다는 되레 진실규명에 더욱 앞장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당내 친이-친박의 계파 논리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국정원이 개입했다면 단순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독단으로 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을 움직일 수 있는 배후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혹들에 대해 철저하게 규명하지 않으면, 새누리당은 결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야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 자체를 흔드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즉 국정원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그 책임을 묻되 그로 인해 국정원의 위상이 추락하거나 국가안보상 중요한 공무수행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국정원장 신임 내정자인 이병호 후보자도 "국정원 정치개입이란 엄밀히 말하면 국정원장 개인의 정치개입이다. 국가정보기관으로서 국정원의 본질적 역할과 기능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한 채 국정원을 어설프게 지휘하다가 일으킨 사달들이 바로 정치개입 시비의 실체"라고 꼬집고 있다.
그는 또 "국정원을 몹쓸 기관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국정원의 개혁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우리 안보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자해 행위"라고 지적했다.
즉 국정원장 개인의 잘못을 국정원 전체 조직의 잘못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의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에 대한 국정원 공작설을 철저하게 조사해 진상을 규명하되, 그것이 남북대치 중인 한반도의 안보체제를 위협하는 상황까지 치달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국정원장 개인의 잘못과 국정원 전체 조직의 잘못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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