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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합의로 달랑 한 글자만 고친 야릇한 수정안을 만들어 박근혜 대통령 손으로 넘긴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새누리당 내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친이계 중진인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회법 개정안에)문제가 있으면 헌법쟁송 등 절차를 밟으면 된다"면서 "이 문제로 정치판을 깨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국회법에 대해 청와대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국회의장 중재하에 여야 합의로 수정안을 만들어 이첩하는 등 국회에서는 나름대로 성의를 다했다"고 수정안이 만들어진 과정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박 대통령의 수정안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밝힌 청와대를 향해 "일부 청와대 비서들의 행태는 도저히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은 우리가 힘을 하나로 합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글자 하나 고쳤을 뿐이니 어쩌니 하면서 비아냥거리는 것은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당초 안의 여러 문장 가운데 한 문장도 아니고, 달랑 ‘요구’를 ‘요청’으로 한 글자만 바꾼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이 정 의원 스스로 생각해도도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사실 제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구’와 ‘요청’은 의미상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일인데, 그것을 ‘호랑이와 고양이 같은 차이’라고 말하는 넋 나간 사람도 있고, ‘요구’라면 위헌성 요소가 있지만 ‘요청’으로 바꿨기 때문에 “이제 위헌 소지를 완전히 없앴다”고 평가한 아주 높으신 양반도 있다. 정말 황당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친박 핵심인 이정현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14대 국회부터 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배 국회의원들도 이 문제를 똑같이 다뤄왔다"며 "이번과 같은 이런 결론(시행령 수정요구권 규정)을 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위헌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만들어진 법 하나만 봐도 야당은 강제성 있다, 여당은 없다, 국회의장은 약화됐다 등 해석이 다르다"며 "한 가지 법을 가지고 입법부에서 이렇게 애매모호하고 혼란스러운 법을 만들어서 넘기면, 국민들은 야당 여당 의장 어디를 따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이나 정의화 의장의 중재안 모두 위헌요소가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그러자 각 언론은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여당 내 계파 갈등이라는 시각으로 보도했다.
아마도 정병국 의원과 이정현 의원은 친이-친박계의 대표적인 인사로 꼽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 문제는 결코 계파문제가 아니다.
정병국 의원 못지않은 친이계 인사인 나경원 의원도 이날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는 사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 기권했었다. 왜냐하면 일부 위헌성이 있다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물론 나 의원은 위헌소지가 있어도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위헌 소지가 있지만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고 그냥 눈감으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는 통상적인 친이계의 생각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국회의원들은 입법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법은 한 번 잘못 만들면, 되돌리기 어렵다.
일례를 들어보자.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게 있다. 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12년 제정됐다. 물론 그 동기는 좋았다. 하지만 소수당이 주요 쟁점 법안 처리와 함께 민생법안을 인질로 삼으면서 악용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실제 선진화법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의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만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야당의 동의 없이는 단 한건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지금 국회는 ‘무능국회’라거나 ‘식물국회’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걸 바로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선진화법을 개정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2 동의, 즉 18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여당 의석은 비록 거대 집권당이라고는 하지만 의석은 158석으로 22석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를 다시 범할 수는 없다. 이건 계파 문제가 아니라 ‘입법독재’를 꿈꾸는 못된 정치인들의 욕심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정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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