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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의 지명 철회를 정국 수습의 첫 단추로 제시했지만, 대통령은 이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최순실게이트’와 관련 지난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김총리 내정자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김 내정자도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 김 내정자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호텔에서 열린 딸 결혼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진사퇴하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 국회에서 김병준 총리 인준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우선 야권의 반발이 거세다.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본회의에서의 인준안 통과 요건은 '재적 의원의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의 과반 찬성'이다. 여소야대 국회인 만큼 야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야 3당은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 철회를 촉구하는 한편 청문회 자체를 보이콧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김 총리 내정자가 자진사퇴 거부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국민 정서와 야당 분위기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대통령이 철회하든지 본인이 사퇴하든지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우 원내대표는 또 "박 대통령 퇴진 투쟁까지 얘기하는 데 김 내정자 사정을 봐줄 여력이 없다"며 "여당에서도 상당수 부결할 것 같은데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김 내정자의 총리 인준은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도 야권이 반대한다면 구태여 김 내정자를 ‘책임총리’로 만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김 총리 내정자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김병준 총리카드를 버린 셈이다. 그런데도 지명철회를 하지 않는 것은 국회에서 총리 인준이 부결되면 자연적으로 사퇴가 이뤄질 것인데 굳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실제 김 총리 내정자는 “국회에서 인중이 되지 않으면 총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총리서리. 즉 ‘서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총리직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국회인준이 부결될 경우 자진사퇴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면 ‘김병준 총리 카드’ 무산 이후 박 대통령은 어떤 스탠스를 취할까?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야당은 지금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국회에 지명권을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총리지명권 양보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실제 국회로 공이 넘어온다면 여야가 합의하는 '거국내각' 총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여야 3당 3색으로 의견일치를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은 거국내각을 하려면 국회에 총리 지명권을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제1야당인 민주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총리에 지명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이 탈당한 후 여야가 모여 콘클라베식으로 총리 후보를 정하자는 입장이다. 콘클라베식이란 결론을 낼 때까지 논의를 지속하는 교황선출식 방식을 일컫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거국내각 자체는 검토할 수 있지만, 야당이 일방적으로 주도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사가 총리가 돼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김병준 카드 이후 김종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가 유력 합의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여론조사 결과 역시 두 사람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매우 높지만 두 사람 모두 문재인 전 대표와는 껄끄러운 사이여서 민주당이 반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공이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거국내각 총리후보를 지명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거국내각을 반드시 구성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현재 ‘최순실게이트’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의 산물이다. YS, DJ,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 모두 비슷한 ‘비선실세’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대국민사과를 해야만 했었다. 결국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 거국내각 총리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분권형으로의 개헌이다. 만일 지금 박 대통령이 하야한다면, 60일 이내에 보궐선거를 치러야하기 때문에 개헌은 물 건너가게 된다. 또 다시 제왕적인 권한을 지닌 ‘괴물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정답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한다면 당장이라도 박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고 싶지만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라면 그렇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분노한 민심에 편승해 자신의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높여보려는 마이너 대권주자들의 경거망동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칠까 걱정이다.
지지율 5%로 사실상 ‘식물대통령’이나 다를 바 없는, 무기력한 박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 시대인 6공화국체제를 끝장내고 국민주권시대인 7공화국 체제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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