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고하승
![]() |
‘최순실게이트’로 정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시종일관 여야 합의에 의한 국무총리를 추천하고 과도정부 성격의 거국내각을 구성해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정치인이 딱 한 사람 있다.
바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다.
그는 국회에서 여야합의에 의해 국무총리로 선출된 자는 그 누구도 총리 제의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그 독배(毒杯)가 설사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해도 기꺼이 그 잔을 받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로 인해 그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로부터 국무총리자리에 연연한다는 황당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치권은 이제야 뒤늦게 그의 주장이 옳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향을 그런 쪽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해서는 하야나 탄핵 등이 현실화될 경우 전권을 넘겨받을 중립적 총리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당장 대통령이 하야나 탄핵을 당할 경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사람은 황교안 국무총리다.
중립적 총리는커녕 거국내각총리로도 부적격인 사람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것은 사실상 박근혜정부의 연속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손 전 대표는 처음부터 ‘여야 합의에 의한 총리 추천’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국회에서 자신이 총리로 추천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나는 그런 독배를 마시지 않겠다”고 말 할 수 없기에 “그 누구도 그런 제의가 오면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답변했던 것이다. 그게 손 전 대표의 성품이다. 자신이 마시지 않을 독배를 다른 사람에게만 마시라고 할 수는 없는 그의 성품이 결국 ‘총리 자리에 연연 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한 셈이다.
아무튼 당초 손 전 대표의 이런 제안에 야권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특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친문(친문재인) 지도부가 그랬다.
총리 추천 논의가 시작되면 초점이 분산될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로 인해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는데, 유능한 총리가 나타나 이런 사태를 조기에 매듭지어 버리면 선거지형이 뒤바뀔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한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선 총리 추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탄핵을 위한 구체적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며 "동시에 총리 자리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핵을 하면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총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의 눈치를 보느라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못할 뿐, 상당수의 민주당 의원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국민의당은 이제는 아예 대놓고 '선 총리 추천론'을 제기하고 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최근 시국간담회에서 “대통령이 만약 하야를 해버리면 황 총리가 계속 (국정운영을) 하는 것”이라면서 “대안으로 4자회담을 통해 총리를 먼저 뽑고 준비를 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전 대표의 안목이 다른 정치인들보다 높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그리고 손 전 대표는 ‘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지금 여야 의원들은 대부분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번 최순실 사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는 것이다.
특히 과도정부 성격의 거국중립내각을 내년 12월대선 때까지 끌고 갈 것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을 통해 자연스럽게 조기대선을 치르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선 총리추천’은 ‘개헌연계론’과도 맞물려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은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손 전 대표가 시종일관 주장했던 ‘선 총리 추천’과 ‘개헌연계론’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하야나 탄핵을 대비하라고 주문했던 손 전 대표의 정치적 안목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역시 정치는 경륜이 필요한 것 같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