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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국민의 명령입니다. 국민은 이미 대통령을 버렸습니다. 국회는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반드시 가결해야 합니다. 만약 국회가 국민의 명령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다면, 국민은 이제 국회를 탄핵할 것입니다.”
'강진일기 - 나의 목민심서' 북 콘서트를 위해 6일 제주도를 찾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국민의 명령에 따라 탄핵소추안을 반드시 가결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먼저 손 전 대표는 ‘촛불시위’를 ‘시민혁명’에 빗대어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적 대전환의 혁명적 길목 위에 서 있다”며 “낡은 시대의 앞 물결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떠나보내고 새로운 시대의 광명을 맞이할 ‘혁명’의 기운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오늘 우리는 ‘시민명예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저는 다시 한 번 위대한 국민의 힘을 보았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국민의 열망을 보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손 전 대표는 “지금 국민의 목소리는 하나다. ‘대통령은 내려와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물러난 자리에 새로운 시대의 역사를 쓰자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즉 ‘탄핵 직후 개헌추진’을 하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그는 개헌추진에 대해 “구체제의 중심가치, 구체제의 운영시스템, 구체제의 기득권세력을 모두 청산하자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였다.
이어 “국민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박정희 식 국가운영에서 벗어나자는 거다. 부패와 특권의 온상이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재벌중심의 경제체제를 끝내자는 것”이라며 “정치검찰을 비롯해 우리사회의 기득권 집단, 특권세력을 뿌리 뽑자는 거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롯해 총체적 무능에 빠진 정치체제와 정당체제도 바꾸자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 위에 신체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 이 모든 염원을 담아 새로운 대한민국, 제7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필자가 판단할 때 이 같은 손 전 대표의 발언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런데 때마침 이날 필자의 집무실을 방문한 어느 유능한 정치평론가의 평가는 달랐다.
그는 “물론 100% 맞는 말이다. 기존 정치인들 가운데 이런 안목을 지닌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제게는 대권주자의 말이 아니라 꼭 교수님 말씀처럼 들린다. 정치적 사안은 ‘사회과학’으로 풀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성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적 멘트를 해야 한다. 하지만 손 전 대표는 때론 정치적인 ‘쇼’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정치부 기자 생활부터 시작해 오늘 날 편집국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25년 이상을 정치권만 지켜보며 밥을 먹어온 사람이다. 그 오랜 세월동안 정치 문제를 객관적 관찰자 입장에서 지켜봐 온 탓에 ‘정치’, ‘선거’, ‘전략’ ‘홍보’ 문제 등에 관한한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자임하던 터였다. 그런데 그런 자긍심이 후배 한마디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사실 그 후배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손 전 대표는 ‘정치 쑈’를 할 줄 모른다.
지난 8월 19일 ‘손학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손사모)’ 사무실 개소식이 북한산 입구에 있는 중앙회 사무실에서 전국 각 지역 본부장과 지회장 등 간부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됐다. 그날 손학규 전 대표의 싱크탱크 격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장관과 3선 국회의원으로 손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이찬열 의원 등 쟁쟁한 인사들이 참석했지만, 정작 손 전 대표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 시각에 그는 고집스럽게 고(故) 박형규 목사의 빈소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통상 정치인들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한번 조문을 다녀가는 것으로 자신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나 손 전 대표는 달랐다. 정말 미련하다고 생각될 만큼 그 빈소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이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 때에도 그는 기꺼이 상주를 자처하며 마지막까지 빈소를 지킨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지난 2006년에는 이른바 ‘100일 민심대장정’이라는 것을 했는데, 당시 필자는 그가 탄광 막장에서 시커먼 얼굴로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견했던 그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필자는 “쇼라도 좋으니 다른 정치인들도 저렇게 한 번 해보라. 그리고 민초를 이야기 하라”며 “손학규의 진정성을 몰라준다면 우리는 유권자의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칼럼을 쓴바 있다.
그렇다. 어쩌면 손 전 대표는 ‘정치 쑈’를 할 줄 모르는 정치인이라는 후배의 지적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그런 모습에 더욱 신뢰가 가는 걸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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