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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한 의제가 아닙니다. 누가 집권을 하든, 보다 책임 있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당선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변화의 속도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변화가 필요할 때 변화하지 않으면 세계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이 필요할 때 개혁을 이루는 것이 성공하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불합리한 제도는 고쳐서 합리적인 제도 위에서 다음 정부가 출범하여 보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책임 있게 국정을 수행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정치권과 국민 여러분의 결단을 당부드립니다.”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는 촛불집회에 나타난 ‘길거리 민심’을 잘 대변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누가 언제 이런 말을 했을까?
바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제왕적대통령제’인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인식하고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면서 한 말이다. 물론 당시 그의 제안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잡을 것이 유력시 되는 한나라당에 의해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은 박대통령 탄핵 이후 초상집이다. 당의 주류인 친박은 ‘폐족(廢族)’으로 몰려 제대로 힘조차 쓰기 어려운 상황인데다가 계파싸움으로 분당(分黨)위기에 처했다. 실제 김무성 전 대표가 신당창당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 개헌을 추진하려면 지금이 기회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논의를 원천차단 하는 등 그의 뜻에 반하는 정치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제 그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광장의 민심은 이제 더 이상 ‘제왕적대통령제’는 아니라는 것”이라며 “6공화국 대통령으로는 박근혜가 끝이어야 한다. 7공화국으로 가야한다”고 개헌론에 불을 지피자 “헌법이 무슨 죄냐. 헌법도 피해자”라면서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아마도 6공화국의 낡은 체제에서 누려온 ‘제1야당의 패권세력’이라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면 국민은 과연 문재인 전 대표의 생각에 동의할까?
아니다. 실제 13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개헌에 공감하는 의견이 응답자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개헌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필요하다’는 응답은 65.5%에 달했다. 반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7.4%에 불과했다. 모름ㆍ무응답은 7.1%였다.
국민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제왕적대통령제의 폐해를 인식하게 됐고, 따라서 대통령의 권력집중에 대해 견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개헌논의 시기에 대해선 어떨까?
문 전 대표는 “지금은 개헌을 말할 시기가 아니다”라며 개헌론을 일축했다. 하지만 국민의 생각은 달랐다.
개헌 시기와 관련, ‘차기 대선을 치르기 전에 개헌해야 한다’는 응답이 50.2%로 과반을 넘었다. ‘다음 정부나 그 이후 정부에서 개헌해야 한다’는 응답(45.9%)보다 높은 것이다.
지난달 KBSㆍ미디어리서치 조사 결과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는 ‘차기 대선 이전 개헌’이 59.2%, ‘다음 정부 이후 개헌’이 38.2%로 ‘대선이전 개헌’ 응답이 무려 20%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
대체 왜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 전 대표가 그의 뜻에 반하는 정치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손학규 전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 등 낡은 체제를 수호하려는 호헌파를 향해 “권력에 눈먼 집단”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지하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이 통탄할 일이다.
문 전 대표는 “단지 당선만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이날 공개된 여론조사는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 10일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가운데, 유선 176명, 무선 82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유ㆍ무선 전화 임의걸기를 통한 전화면접조사 방법을 썼으며 응답률은 14.4%로 집계됐다. 2016년 11월 행정자치부 발표 주민등록 인구 기준을 적용해 지역ㆍ성ㆍ연령별 가중치를 부여했다.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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