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손학규, ‘제2의 민추협’ 깃발을 들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1-02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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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평소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아 ‘선비’라는 소리를 듣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2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그가 이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 '개헌과 임기단축은 수구세력 주장'이라고 비판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지키겠다는 것이 수구"라며 “수구의 뜻도 모르는 마타도어”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지난 연말에도 어김없이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날까지 무려 10회에 걸친 촛불집회가 열린 것이다. 촛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피켓 문구는 ‘박근혜 퇴진’, ‘이게 나라냐’, ‘나는 나를 대표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박근혜 퇴진’ 구호는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그로 인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으니 사실상 정치권의 역할은 끝난 셈이다.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 갔고, 헌재가 현재 심리 중인 까닭이다. 만일 입법부인 국회나 정당이 사법부인 헌재를 압박하면, 그것은 ‘3권 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마냥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정치권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 가지 피켓 문구 중 남은 두 가지인 ‘이게 나라냐’, ‘나는 나를 대표 한다’는 민중의 함성을 실천하는 일이 남아 있다.

먼저 ‘이게 나라냐’는 구호가 의미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금의 낡은 6공화국 체제는 세계에서도 낙후된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체제로 ‘나라’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니,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함성인 것이다. 거기에 ‘나는 나를 대표 한다’고 했으니, 새로운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 공화국’이 돼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같은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고, 특정 정파가 제왕적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서 ‘호헌’을 주장하고 있으니, 손 전 대표가 불같이 역정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대체 “헌법을 바꾸지 말고 이대로 가자”는 못된 정치세력은 누구인가.

바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다.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노 핵심인사들이다.

그러나 정말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호헌을 주장해선 안 된다.

왜 그런가. 지난 2007년 1월 9일, 노무현은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개헌을 제안했었다.

당시 그는 “개헌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한 의제가 아니다. 누가 집권을 하든, 보다 책임 있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였던 박근혜의 반대로 짓밟히고 말았다. 당시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던 박근혜는 개헌을 주장하는 노무현을 향해 "선거밖에 안 보이냐"며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쏘아붙였다.

사실 현재의 6공화국 체제, 즉 제왕적대통령제는 군사쿠데타로 2공화국을 무너뜨린 박정희 정권이 만든 체제로 사실상 ‘박정희 유산’이다. 노무현이 당시 제왕적대통령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걸 바꾸자고 했는데,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박근혜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근혜는 박정희 유산인 6공화국체제 수호를 위해 노무현의 개헌제안을 뿌리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손학규가 제왕적 권한을 갖는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민의 주권이 강화되는 분권형 개헌을 하자는데 친노 문재인과 안희정이 기를 쓰고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9년 전의 박근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기 그지없다.

사실 문재인과 안희정이 ‘박정희 유산’인 낡은 6공화국 체제를 수호하려는 호헌파라는 점에선 박근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실제로 박근혜가 9년 전에 주장했던 호헌을 문재인과 안희정이 지금 앵무새처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이미 ‘박근혜게이트’를 통해 더 이상 제왕적대통령이 탄생되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제왕적 권한을 탐하는 호헌파라면, 그것이 친박패권세력이든 친문패권세력이든 결코 그들에게 정권을 넘겨주어선 안 된다. 그러자면 황제 대통령의 탄생을 꿈꾸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싸울만한 새로운 개혁세력이 나타나야만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과거 우리나라 정당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김영삼(YS)과 김대중(DJ) 진영은 신군부독재에 저항하고 양 세력의 연대를 도모하는 한편 제도권 정치진출의 가교로서 민주화추진협의회(약칭 민추협)를 조직했다. 민주협은 1985년 2월 국회의원 총선거 직전인 1월 18일, 신한민주당(신민당)을 창당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신민당은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한국당을 누르고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만일 지금, 제왕적 대통령자리를 탐하는 친문 패권세력에 맞서 YS 세력과 DJ 세력이 재결합 한다면, 그런 기적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재 국민의당 주축은 박지원 의원 등 DJ계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개혁보수신당의 주축은 YS계 김무성 의원이다. 만일 이들이 ‘제2의 민추협’을 만들고, 박정희와 같은 제왕적대통령을 탐하는 호헌세력에 맞서 싸운다면 당시의 신민당 돌풍과 같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중심인물로는 개헌을 화두로 정계복귀를 서언한 손학규 전 대표가 적임자일 것이다. 그는 YS가 발탁해 정계에 진출했음에도 DJ의 적통을 이어받은 민주당 대표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김근태 조영래 등과 함께 제왕적 권한을 지닌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한 3총사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6공화국체제 수호에 나선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뚫고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손학규 전 대표가 ‘제2의 민추협’ 깃발을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 그것이 동서화합의 길이고,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결합으로 국민대통합을 이루는 길이라면 망설일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이번 촛불정국이 대통령 하나 바꾸는 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런 촛불정국을 초래한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달라는 국민의 요구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그러자면 ‘제2의 민추협’ 탄생은 필연이다. 어쩌면 손학규 전 대표가 중심이 되어 오는 22일 출범하는 ‘국민주권개혁회의’가 그 둥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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