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손학규 저격수’가 된 까닭은?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1-04 14: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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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구축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승리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저지하기 위한 방어 전략 보고서’에 담겨 있는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한마디로 지금 이대로 대선을 치르면 더불어민주당이 무난히 승리하겠지만, 개헌을 고리로 제3지대가 구축이 되면 패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가 기를 쓰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저격수’ 노릇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안희정 지사는 스스로를 “친노 폐족”이라고 칭했던 친노 인사들 가운데서도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와 사실상 ‘한통속’인 셈이다.

당초 여의도 정가에선 안희정 지사가 ‘문재인 대체재’가 될 가능성을 주목하는 분위기 팽배해 있었다.

호남지역에 팽배한 ‘반문재인 정서’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이 주자를 바꾸게 될 것이고, 그러면 ‘친노’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는 안희정 지사에게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지난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조기대선’이라는 돌발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조기대선이 이뤄질 경우 여야 대선주자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호남지역에 대한 ‘반문정서’도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면 ‘문재인대체재’를 기대했던 안희정 지사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 지사가 선택한 방향이 ‘포스트 문재인’인 것 같다.

즉 조기대선으로 인해 얼렁뚱땅 선거를 치르게 되면,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큰 틀에서 그를 지원하고, 대신 문 전 대표로부터 차차기를 보장받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자면 문재인 전 대표가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선가도에 아주 위협적인 존재가 등장했다.

바로 ‘제 7공화국’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들고 정계복귀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다.

손 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7공화국’은 제왕적대통령제인 낡은 6공화국체제를 끝장내고 국민주권이 강화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의미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에게 미치는 파급력은 실로 대단하다.

실제로 손 전 대표는 오는 22일 개헌에 공감하는 세력을 모아 ‘국민주권개혁회의’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패권세력, 즉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6공화국체제를 사수하려는 호헌세력에 실망한 현역 의원들이 탈당해 손학규 진영에 합류할 것이란 소리도 들린다.

더 나아가 국민의당과 당 대 당 통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 손 전 대표는 이른바 친박.친문 패권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모이는 ‘빅텐트’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개헌론을 저지하기 위한 보고서에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구축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승리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라고 적은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즉 이번 대선이 호헌을 주장하는 ‘수구파’ 문재인 대 개헌을 추진하는 ‘개혁파’ 손학규 대결로 구도가 새롭게 짜일 경우 문재인 전 대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아가 손 전 대표에게 오히려 역전당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안희정 지사가 손학규 전 대표를 향해 연일 독설을 퍼붓는 것은 바로 이런 상항을 우려한 때문일 것이다.

실제 그는 전날 손 전 대표를 향해 느닷없이 “정계은퇴를 하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는가하면 최근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별히 손 전 대표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당을 흔들지 말라”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결과적으로 안 지사는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가도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손학규 전 대표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포스트 문재인’의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의 공격이 있던 바로 그날 ‘손학규’라는 검색어가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정계복귀선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에 무관심했던 국민들이 손 전 대표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손 전 대표가 왜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대리인 격인 안희정 지사의 ‘손학규 저격수’ 노릇은 실패한 셈이다.

그나저나 호헌파 문재인과 안희정에게 있어서 개헌파 손학규는 정말 무섭고도 두려운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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