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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 대 호헌'으로 나눠진 현행 대선 판을 흔들고, ‘개헌연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우선 ‘개헌은 개혁’, ‘호헌은 수구’라는 인식으로 인해 자신이 ‘반(反)개헌’, ‘반(反)개혁’인물로 낙인 찍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내세우는 정책공약을 ‘개혁정책’으로 포장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특히 개헌 문제에 대해 “헌법이 무슨 죄냐?”며 6공화국 체제 수호의지를 밝혔던 그가 돌연 입장을 바꿔 “2018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하는 등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전술을 채택하기도 했다.
사실 문 전 대표의 ‘개헌 제안’은 이미 실기(失期)했다.
더구나 여야 정치권에선 문 전 대표의 2018년 개헌론은 민주연구원 개헌저지문건이 보여주듯 개헌을 저지하기 위한 꼼수로 믿을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 민주연구원의 ‘개헌저지문건’엔 개헌 공약(公約)은 나중에 경제위기 등을 이유로 안 지켜도 되는 공약(空約)이 될 것이란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문제에 대해 줄곧 ‘경제블랙홀’이라며 개헌논의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 된다는 조언인 것이다.
한마디로 개헌공약은 나중에 당선되면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 ‘개헌 대 호헌’으로 대결구도가 짜이지 않도록 개헌을 공약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의 개헌 공약은 ‘공약(空約)’을 위한 ‘공약(公約)’에 불과한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개헌에 찬성하다고 말만 꺼내놨을 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게 그 반증이기도 하다.
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이 “변해야 할 때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바로 수구세력”이라며 “사실상 개헌반대를 말하는 문 전 대표는 호헌파이며 수구세력”이라고 비난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개헌 문제에 관한한 가장 진정성이 있는 대권주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다.
그의 정계복귀 일성이 바로 “제 7공화국”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20일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87년 헌법체제가 만든 제6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다. 이 (제왕적대통령)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며 "명운이 다한 제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국민주권시대인)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행하게도 당시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대권주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불과 3개월도 안된 시점의 상황이다.
지금은 국민의당이 ‘개헌 즉각 추진’을 당론으로 결정했지만, 불과 두달 전만해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개헌보다는 기득권 양대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을 보였었다. 최근 "(정치권은) 시민주권의 제7공화국을 만드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당시에는 개헌논의에 부정적이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른바 ‘최순실게이트’의 발생으로 더 이상 제왕적대통령제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됨에 따라 그들 모두가 개헌논의를 시작하자고 입을 모으고 있지 않는가. 그들이 이제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을 손학규 전 대표는 이미 전남 강진 토굴에 앉아서 훤히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정치 경륜이다. 문재인 전 대표나 안희정 충남지사와 같은 젊은 호헌파들이 미처 내다보지 못하는 것을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천리안’과 같은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바로 4선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거치면서 쌓은 깊은 경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개헌론은 ‘개헌저지 보고서’에 나온 권유를 그대로 따라하는 문재인 전 대표의 ‘꼼수 개헌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유력 대권주자의 눈치 보기를 하다가 뒤늦게 국민의 ‘촛불시위’ 함성에 놀라 호헌에서 개헌으로 방향을 튼 다른 대권주자들과도 결이 다르다.
손 전 대표는 “개헌을 반대하는 호헌파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최고의 개혁은 개헌이다. 개헌 없는 개혁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꼼수’로 반개혁이다.
앞으로 문재인 전 대표가 이런저런 정책을 발표하면서 ‘개혁정책’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들겠지만, 그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현재의 낡은 6공화체제가 체제가 유지되는 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4.19 혁명체제인 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5.16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일파가 만든 제왕적대통령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대충 법률 몇 개 조항을 손질하는 정도로는 세상이 바뀔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국민에게 있어서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게 국민의 요구인 만큼, 어려운 상황에서도 1월 22일 출범하는 손학규의 ‘국민주권개혁회의’가 순항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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