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리포터’의 ‘저녁이 있는 삶’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2-05 14: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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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최근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비망록)에 적힌 3줄의 업무지침이 직장인들 사이에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①야간의 주간화 ② 휴일의 평일화 ③가정의 초토화 ④라면의 상식화"
아마도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대부분이 이런 애환을 겪고 있을 게다.

이른바 ‘벚꽃대선’이 예상되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권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약속하고 나선 것은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캐치프레이즈는 2011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이 내건 것으로 모든 직장인들의 공감을 샀다.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놀랍다. 단순히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늘어난 여가 시간이 내수 확대로도 이어져서 실제로 주40시간 근무제 이후 휴일 여가시간이 10% 늘면서 여가비용도 3% 늘어났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노동계 최대 현안인 일·가정 양립이 수월해지면서 육아 부담이 줄어들어 저출산 문제에도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 가장 큰 장점은 노동시간을 줄인 만큼 일자리를 나눠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현재 주5일 근무제 미적용 사업장에 주5일 근무를 도입해 일거리를 나누면 새로운 일자리가 5~70만개가 더 생겨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저녁이 있는 삶’이 직장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내수를 확대하는 마법의 지팡이와도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손학규 의장에게 ‘경제마법사’, 혹은 ‘해리포터’에 빗대어 ‘손리포터’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실 손학규 의장은 경제와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2007년 당시 ‘경제대통령’이란 구호로 대선에 출마한 이명박(MB) 서울시장을 능가하는 괴력을 발휘했었다.

실제 MB가 서울시에 12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안 손학규는 경기도에 무려 74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바 있다. 무려 6배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2007년은 물론 2012년 대선 당시에도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을 맛봐야 했다. 특히 2012년 당시에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가 삶에 지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에도 경선에서 패했다.

민주당 당원과 대의원 및 일반국민들이 참여한 현장 투표에서 경쟁자인 문재인 후보를 앞섰음에도 ‘모바일투표’라는 이상한 투표방식에서 패배해 끝내 경선 문턱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손학규 의장이 경선에서 승리했다면 본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충분히 꺾었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어쩌면 ‘최순실게이트’로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박근혜정부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루겠다던 그의 꿈은 그렇게 좌절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손 의장이 ‘제7공화국’을 화두로 정계복귀를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야 대선주자들이 앞 다퉈 그의 공약을 베끼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한국의 근로자들은 장기간의 노동에 시달리는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4년 국가별 연간 근로시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들은 1년간 평균 2124시간을 근무, 멕시코(2228시간)와 코스타리카(2216시간)에 이어 3위를 차지해 '최장근로국가'라는 불명예를 간신히 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은 이른바 '칼퇴근'을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유 의원은 "지금 겪는 현실은 야근에 주말 근무에 일시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결혼도 안하고 싶고 아이도 낳기 싫고, 젊은 부부들의 50% 넘게는 육아를 부모에게 맡긴다. 국가사회 전체가 획기적으로 확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며 '칼퇴근'의 법제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최근 손학규 의장에게 “현장을 다녀보면 어려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느낀다”며 “예전에 하셨던 말씀대로 ‘저녁이 있는 삶’이 정말로 필요한 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근무시간 단축을 공약으로 내걸고 나섰다. 한마디로 여야 대선주자들이 너도나도 뒤질세라 ‘저녁이 있는 삶’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손학규 의장에게 붙은 ‘손리포터’라는 별명이 조금도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모쪽록 이번 대선을 통해 ‘손리포터’ 손학규 의장이 주장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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