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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재야’ 인사로 불리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가 어제 저녁 차 한 잔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선약이 있었지만, 기꺼이 취소하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장 대표는 필자가 유일하게 ‘선생님’이라 부르는 분이시기에 ‘무슨 일이시냐’고 묻지도 않았다.
사실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는 전태일 열사를 최초로 세상에 알린 민주화투사이자, 간첩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인사 가운데 가장 오랜 수배 생활과 옥살이를 한 민주화운동가로 한 때 대단한 명성을 날렸었다.
다른 사람들이 속속 정치권에 진입할 때에도 그는 고(故)김대중 전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들의 영입 제안을 뒤로한 채 오로지 자신의 길만을 고수해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마지막 재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마산 교도소에서 장기표 대표가 옥살이를 할 당시 그를 관찰하고 사찰일지에 기록해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던 한 교도관은 장 대표에 대해 “하루는 대구에서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가 포승에 묶여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이 독방에 수용되기 직전에 얻어맞았는데 장 대표가 그걸 보자마자 감옥 창살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차라리 나를 때리라며 눈물로 항의했다”며 “제 한 몸 버티기도 힘든 감옥에서 정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실천했다”고 회고했다.
그런 분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만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깎듯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급하게 찾는 것일까?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통령출마 선언을 하겠다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정말 말리고 싶었지만, 먼저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부터 물었다.
그의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굳이 자신이 나설 이유가 없겠지만, ‘문재인 대세론’을 보니 걱정되어서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불가론’을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재차 물었다.
그는 크게 두 가지 사유를 꼽았다.
우선 문 전 대표는 ‘제2의 우병우’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실제 문 전 대표는 노무현정부 시절 당시 민정수석으로 ‘왕 실세’였다. 그러나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이 각종 부정부패에 연루될 때, 그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박근혜정부의 ‘왕실세’였음에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를 막지 못한 것과 똑 같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그가 당대표로 있을 때,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했음에도 단 한 차례도 책임지지 않아 끝내 야권을 분열에 이르게 한 점을 꼽았다.
그러보니 문 전 대표는 2015년 4.29 재보궐선거의 완패에도 불구하고 대표직을 내려놓지 못해 ‘탐욕(貪慾)의 상징’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가 터지고, '세월호 1주기'(4월 16일)까지 겹친, 그야말로 야권이 절대 유리한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로 도저히 질려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전패'(全敗)를 당한 것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당내에서 제기되는 ‘책임론’을 일축하며 대표직을 고수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국민의당 창당에 이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문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게 장기표 대표의 생각이다.
다른 정치인들의 비판이라면 거기에 어떤 ‘정략적 계산’이 담겨 있을 수도 있겠지만,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도 ‘마지막 재야’로 남아 있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분의 지적이기에 ‘문재인 불가론’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가 ‘시민추대위원회’의 추대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사실상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차마 만류하지 못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은 ‘문재인만큼은 결코 안 된다’는 소신에 따라 과감하게, 기꺼이 무모한 도전을 선언한 그분의 마지막 열정이 너무 아름다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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