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손학규는 왜 뜨지 않나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2-26 11: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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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지난 2006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 여론조사 전문가가 ‘아까운 김근태-손학규는 왜 뜨지 않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당시 그는 여야 대선주자인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손학규 경기지사에 대해 ‘참, 아까운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그런 평가는 당시 정치부 기자들도 대부분 인정하는 것이었다.

실제 그해 5월 중순경, 국회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후보 적합도’ 조사를 했더니 여권은 김근태(11.5%), 고건(8.5%), 정동영(1.5%) 순이었고, 야권은 손학규(24.6%), 이명박(10.8%), 박근혜(6.9%) 순이었다. 김근태와 손학규가 여야 각 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낸 것이었다.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와는 영 딴 판인 것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여론조사 전문가는 “가장 결정적인 변수가 바로 ‘출신지역’이다. 내 지역 출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내게도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역감정’이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도 유권자들에게는 지역연대감이랄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김근태는 서울 출신이고 손학규는 경기도 시흥출신이다. 이것이 바로 김근태와 손학규가 고전하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이것이 바로 한국정치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 2017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여전히 뜨지 않고 있다.
영남과 충청 출신 후보들이 지역민의 강한 애정을 바탕으로 10% 이상은 기본 점수로 거저먹고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그는 단지 경기도 시흥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각 종 여론조사에서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대선주자들을 보면 모두가 영남 아니면 충청권 인사들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이용해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일례로 부산 출신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젊어서 전남지역과 양말유통업을 했는데, 그 지역 장사꾼들에게 속아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어려서 엄청 고생했다. 그 사람들(전라도 사람들)의 행태는 고쳐지지 않았다"고 호남인을 폄훼한 바 있다. 그 결과 문재인은 전통적인 여당 텃밭인 부산에서 야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참,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문제는 개인차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다. 어떻게 운명적으로 타고난 고향을 바꾸겠는가.

그런데 단지 손학규가 경기도 시흥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지금 정체하느냐 도약하느냐 하는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데,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이건 성숙한 유권자의 태도가 아닐 것이다.

요즘 뒤늦게 경기도 시흥에선 ‘손학규 붐업’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고장 출신의 유능한 대선주가 지역기반이 없다는 이유로 홀대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까지 모르쇠로 일관해서야 되겠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시흥에선 천여명에 가까운 자발인 손학규 지지모임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통합’이 절실한 시점이다. 남북이 극도의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호남이 분열하고 충청권마저 찢겨져 나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지역감정이 전혀 없는 경기도 출신의 정치지도가 탄생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손학규는 이미 전남 강진에서 2년 이상을 살아온 탓에 호남민신을 잘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으로 이사해 충청도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그들의 소리를 현장에서 들어온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에 앞서 강원도 춘천에서는 상당기간 강원도민들과 함께 삶의 애환을 나눈 일도 있다.

한마디로 손학규는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경기도 시흥 출신이지만, 호남과 충청, 강원까지 직접 그 지역에서 거주하며 민심을 살펴온 탓에 그들의 애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정치인이라는 뜻이다.

뒤늦게나마 ‘아까운 손학규’가 뜨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경기도 시흥 주민들이 ‘우리라도 나서야겠다’며 자발적인 대규모 지지단체를 구성했다니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무척 궁금하다. 과연 시흥에서 불어오기 시작한 ‘손풍(孫風, 손학규 바람)’이 이번 대선 판을 뒤흔드는 ‘태풍의 눈’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잔잔하게 불어오는 ‘손풍’이, 잠자고 있는 경기도민들, 특히 지역에 대한 애착이 덜한 경기도민들의 애향심을 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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