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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경선에서 당을 장악한 안철수 전 대표가 6연승을 했다. 사실상 후보로 확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안철수 전 대표에게 패배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역할은 ‘경선 불쏘시개’로 끝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손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20일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낡은 제왕적대통령체제인 6공화국을 끝장내고 새로운 나라 7공화국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무엇이 되는가를 보지 말고 무엇을 하는가를 봐 달라”고 당부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그의 최종 목표는 ‘대통령 당선’이 아니라 ‘7공화국 건설’에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손 전 대표는 자신이 국민의당 경선에 출마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7공화국’을 건설하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승리를 기약하기 어려운 ‘안철수 당’이라는 국민의당에 들어가 기꺼이 경선 참여를 결정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선은 예상했던 대로 ‘손학규 참패’로 막을 내릴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추구하는 목표자체가 상실된 것은 아니다. 당초 그의 목표가 ‘대통령’이었다면 경선패배로 목표를 상실하게 되겠지만, 그의 최종 목표가 ‘7공화국’ 건설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즉 ‘7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여러 방안들 가운데 하나의 방법이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뿐, 다른 방안들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무엇이 되는가를 보지 말고 무엇을 하는가를 봐 달라”는 손 전 대표의 발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그의 꿈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국민주권이 강화되는 개헌을 하는 데 있으니, 그걸 지켜봐달라는 뜻 아니겠는가.
실제 그는 전날 서울 장춘체육관에서 열린 합동연설 직후 "우리가 바른정당과 연합해 그게 통합 수준으로 가도 좋다"고 말했다. 바른정당과 연대 차원을 넘어 통합까지 거론한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양당체제가 아니라 다당체제다.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여소야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선 여러 정파가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제왕적대통령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선거 전에 분권형 개헌에 동의하는 세력이 서로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
손 전 대표의 다음 역할은 바로 그런 ‘대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즉 친문.친박패권세력을 제외한 제반 세력을 대선 이전에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그것이 안철수 후보의 당선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안 후보가 끝내 ‘연대’를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폐쇄적인 자강론을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다. 국민의당은 대선에서 대참패할 것이고, ‘자강론’을 주장한 안 전 대표와 그런 ‘자강론’에 힘을 실어준 박지원 대표는 선거패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데, 지금의 국민의당에서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은 손학규 전 대표가 유일하다.
그렇게 되면 손 전 대표는 ‘대통령’이나 ‘대선후보’로서가 아니라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새롭게 선출된 ‘당 대표’로서 꿈에 그리던 ‘7공화국’ 건설을 위해 분권형 개헌을 적극 추진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년 지방선거는 ‘손학규 체제’에서 치러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국민의당 관계자들이라면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박지원 대표의 은근한 압력(?)에 못 이겨 안철수 전 대표를 무작정 지원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자강론’을 주장하는 안철수 전 대표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정말 국민의당 지지자들인지 의문이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자강(自强)론은 필패전략’이라고 지적하는가하면,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안철수 양자구도’가 아닌 다자구도나 3자구도의 경우 ‘안철수는 필패후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도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탓이다.
혹시 ‘자강론’을 주장하는 안철수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는 ‘빅텐트’가 쳐지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 즉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당선을 바라는 ‘X맨’들이 포함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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