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제왕에서 8년 황제대통령으로?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9-05 12: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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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5일 오후 2시부터 대구시청 대회의실에서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를 공동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개헌논의에 돌입했다.

내년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이기 위해 올해 안에 개헌안 초안을 마련한다는 목표아래 전국을 순회하며 열심히 국민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올해 제헌절 경축사에서 내년 3월 중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고 5월 국회 의결을 거쳐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국회개헌특위는 전국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국민대토론회를 실시하고 있다. 이날 대구 토론회는 부산, 광주에 이어 세 번째로 실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모두 부질없는 짓 같아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국회 개헌특위의 개헌방향은 분권형 개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서부터 ‘권력구조 개편’은 배제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는 탓이다.

실제 입법부 수장인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헌 논의와 관련 “지방분권과 함께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의 앙꼬”라며 “앙꼬 없는 진빵은 차라리 먹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 “국회차원에선 준비 작업이 충분히 이뤄졌다”며 “이제 개헌여부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정상 무리 없이 내년 6.13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국민투표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개헌의 방향과 관련해선,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으면 안 된다”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제한하는 개헌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크게 늘어난 것 같다”고 ‘분권형 개헌’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7공화국’ 개헌을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분권형 개헌에 대해 합의를 이루기도 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분권형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상당수다.

따라서 당장 ‘분권형 개헌안’을 만든다고 해도 하등의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문재인대통령과 차기 유력 여권대선주자 등의 발언들을 보면,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실제 지난달 31일부터 5박 7일 일정으로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 중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4일(현지시간) “이번 개헌 논의가 시간에 쫓겨서 졸속 처리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프랑스가 2003년 자치분권 헌법개정에 30년이 걸렸다”고 강조했다.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안 지사는 차기 여권의 잠룡 가운데 서도 가장 유력 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개헌과 관련해선 현직 문재인 대통령 못지않게 그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마치 내년 6월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개헌안에 대해선 ‘졸속’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분권형 개헌에 대해선 국회차원에서 충분히 논의된 상태다. 지난 18대 국회 김형오 의장(2008년 7월∼2010년 5월)과 19대 강창희 의장(2012년 7월∼2015년 5월) 시절 특위와 자문위를 거쳐 상세한 내용의 보고서가 제출됐다. 20대 국회에서도 특위 출범 후 14차례의 전체 회의와 10차례의 분과별 회의, 100여 차례 토론회를 통해 쟁점 등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진 마당이다. 지금당장 개헌안을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졸속’일 수 없는 것이다.

안 지사 역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 당시 개헌문제와 관련,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는 약속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개헌추진은 두 가지 기회가 있다. 국회 개헌특위서 추진하는 방안과 정부산하 개헌특위서 추진하는 방안이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국민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서 국민주권적 방안을 마련한다면 정부도 받아들여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국민투표 붙이겠지만, 만약 국회에서 합의를 못 이루면 정부가 그때까지의 논의사항을 이어받아 자체적으로 정부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회개헌특위 안을 수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생각하는 정부안을 따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혹시 4년 중임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추진하는 현직 문 대통령과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안 지사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5년 제왕적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으려던 국회의 노력이 헛되이 끝나고, 8년 황제적대통령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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