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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논의가 오늘날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중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전당원투표를 제안하면서 자신의 재신임과 연계하는 배수진을 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당시 안 대표는 자신의 재신임 결과에 상관없이 통합 후에는 백의종군 할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당원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결국 반대파의 ‘나쁜 투표거부’ 운동에도 23%가 넘는 투표율에 74.6%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지난해 11월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만나 통합 논의를 시작할 때부터 ‘양당 대표의 2선 후퇴’가 거론됐으며, 이는 유 대표가 먼저 안 대표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는 유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아마도 초반에 ‘2선 용퇴’를 선언하는 것이 통합 논의에 탄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적어도 통합을 추진하는 안철수 대표의 진정성에 대해선 당원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통합반대파들 역시 그 점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당연히 ‘2선 후퇴’를 선언할 줄 알았던 유승민 대표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민의당 일각에서 “안철수 대표가 백의종군을 선언한 만큼 유 대표도 공평하게 2선 후퇴를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유 대표를 압박하고 있지만, 유 대표는 최근 자신들의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통합에 대해서 결론도 안 났는데, 지금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확답을 피한 바 있다.
심지어 바른정당의 일부 의원들은 “유 대표의 2선 후퇴 선언이 당 지지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통합 논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유 대표가 안 대표와 함께 당 대표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형식적으로는 안 대표와의 ‘공동대표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안철수 대표에게 사실상 ‘거짓말쟁이’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으로 안 대표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결국 유승민 대표가 통합정당의 당권을 쥐겠다는 뜻이 아닌지 우려된다.
안 대표가 통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선당후사’ 정신을 발휘했다. 유 대표 역시 안 대표처럼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만일 통합 이후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가 ‘헤게모니 쟁탈전’ 양상을 보인다면, 중도통합을 기대하던 유권자들도 눈살을 찌푸릴 것이고 6.13 지방선거에서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통합정당의 대표는 어디까지나 ‘관리형 대표’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경륜 있는 인사를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영호남이 모두 거부감 없는 인사여야 한다.
그런데 바른정당 지상욱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부산 출신의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내세워 ‘신영남패권’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사실이라면 걱정이다. 가뜩이나 호남지역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 출신의 안 대표와 대구 출신의 유 대표에 이어 관리형 대표마저 영남 출신이라면, 그 반발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안철수 대표는 이번 주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를 출범시키는 등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집중하고 있다.
내일(8일)최고위원회의에서 전준위원 인적 구성을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9∼10일쯤 당무위원회 회의를 개최해 전준위 출범 절차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통합파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반대파는 전준위 구성을 둘러싸고 반대파 40%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가 하면 전당대회 불참으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유 대표는 "신당을 만들기 전에 외교 안보에 꼭 합의를 봐야 한다"면서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한다.
정말 중도개혁 통합에 대해 안철수 대표처럼 진정성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이를 ‘꽃놀이 패’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다.
만일 안 대표가 중도통합의 물고를 트지 않았다면 지금쯤 바른정당은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바른정당에 대한 관심은 ‘통합’을 전제로 한 관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고하거니와 지금은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가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일 때가 아니다. 안 대표가 백의종군을 선언했듯이 유 대표 역시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후일을 도모함이 옳다. 더욱이 ‘신영남패권’ 구상은 안 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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