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민폐국회’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8-03-01 12: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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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여야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달 28일 밤늦게까지 지방선거 선거구획정을 핵심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시도했지만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밤 12시까지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지 못하자 자동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헌정특위는 1일 자정에 회의를 다시 열어 새벽 0시 05분에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미 본회의가 산회한 상태라 본회의 처리 방법이 없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오는 5일 광역의회 선거구 획정을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예비후보 등록일이 2일이기 때문에 출마예정자들은 일단 현행 선거구에 따라 예비후보자 등록을 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시·도 의원들은 자신의 선거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깜깜이 후보등록'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후에 개정 법률에 따라 선거구가 변경되면 예비후보자는 출마하고자 하는 선거구를 다시 선택해야 하고, 선관위는 변경된 선거구의 선거비용제한액을 다시 공고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상황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에 따라 정치권이 작은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실제로 전날 지방선거 광역의원 선거구 획정이 안된 주된 이유는 일부 의원들이 선거구 획정에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인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을 지역구로 둔 한국당 안상수 의원은 "내 지역구는 (광역의원 수가) 하나 줄어들었지만 인천 남동구와 부평은 한 명씩 늘어 6명이 됐다. 인구가 비슷한 서구는 4명 그대로 유지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인천에서 광역의원이 늘어난 남동구는 여당인 민주당 윤관석 의원의 지역구다.

한국당 나경원 의원도 "국회의원은 8석이 늘었는데, 왜 시도의원은 27석이나 늘었느냐. 납득이 안 된다"고 지적하는 등 2월 임시국회 회기 마감 몇 분 전까지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결국 헌정특위의 의결을 기다리던 정세균 국회의장은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2월 임시국회 종료를 2분 남긴 오후 11시 58분 본회의 산회를 선포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선거구 획정 시한보다 2개월 반이나 늦게 합의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본회의 의결에 실패한 것이다. 당초 국회의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은 지난해 12월13일이었다.

더구나 여야가 광역·기초의원 56명 증원에 합의한 것을 두고 ‘친위조직 밥그릇 챙기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여야는 전날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지역구 시·도의원(광역의원)은 현행 663명에서 690명으로 27명 증원했고, 자치구·시·군의회의원(기초의원) 총정수도 현행 2898명에서 29명 늘어난 2927명으로 조정하는 개정안을 합의했다.

이에 대해 여야는 '인구 증가'를 이유로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자신들의 손발 역할을 하는 지방 의원 숫자를 늘렸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왜냐하면 인구가 줄어든 영·호남은 여야 이해관계가 맞서 의원 정수를 줄이지 않은 대신 인구가 늘어난 수도권 등은 더 늘리기로 합의한 탓이다. 인구증가가 이유라면 수도권에서 지방의원 정수를 늘리는 대신 인구가 줄어든 영.호남의 지방의원 정수는 줄이는 게 맞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여야가 내세우는 ‘인구증가’라는 명분은 ‘친위조직’ 확대를 위한 궤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지 않고, 추후 계속 논의하기로 한 것도 문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패권양당엔 불리하지만 다당제 하에서 군소정당이 지방선거에서 도약할 수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각 정당의 후보들이 득표한 비율에 맞도록 비례대표의석을 배정함에 따라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의 차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제도이다. 그런데 여야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선거구 획정 시한보다 2개월 반이나 늦게 합의를 시도했음에도 작은 이해관계 때문에 본회의 의결에 실패한 국회.

국회의원들의 친위조직인 지방의원들의 수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선 전격 합의했으면서도 정작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선 합의를 이루지 못한 국회.

이런 국회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지금 국민들 상다수가 이런 국회를 ‘민폐국회’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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